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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추석에 어디 안 갔다.

어쩌다 보니 이번 추석은 조촐하게 우리 가족끼리만 보내게 되었다. 추석 전날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보러 갔다. 할머니는 어디가 아픈지도 모를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읽은 신문을 칼같이 접어 노끈으로 묶어 배출한다. 옆 집 할아버지 식구에요, 하니까 옆 가게 주인이 주차자리를 내 주었다. 할아버지는 대뜸 나더러 결혼을 일찍 하라고 한다. 지금 한들 할아버지 세대로 치면 일찍은 아니겠으나, 우리 친가 내 세대는 나보다 한참 위 형들부터 결혼 안 하고 버티기로 유명하다. 동생이 나 대신 괜히 결혼 얘기의 표적이 되어줬다.

자기 또래의 사람들이 죽거나, 아니면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의 현실과 무관한 존재로 물러나는 경험이 쌓이면서 나이든 사람은 원하든 원치 않든 각종 상징들이 중첩되어 이름표처럼 붙는다. 세상을 떠난 어른들은 떠나기 직전의 모습으로 기억되지만 더 오래 곁에 있었더라면 또 다른 역할들을 맡고, 또 다른 것들을 상징하는 사람들이 되었을 것이다. 단지 없어지지 않고 계속 있었다는 이유로 오래 산 사람들은 옛날 생각을 지금까지 하고 있는 유난스러운 사람들의 모습이 되어간다.

토마토 퓨레에 양파와 마늘, 육수, 잣, 크림 약간을 넣고 끓인 뒤 갈아낸 단순한 수프에 겉면에 마요네즈를 발라 바삭하게 구운 그릴 치즈를 곁들여 같이 추석 아침으로 먹었다. 명절은 많은 사람들이 누가 요리하고 누가 먹는가의 문제로 신경이 곤두서 있는 시기다. 이렇게 간단한 식사를 만들면 우리 가족들은 너무 맛있어하며 잘 먹어주고 만든 사람을 치켜세워줘 고맙지만, 가끔 요리사 행세를 하고 박수를 받는 것과 평일 새벽에 타인을 위해 요리한다는 것은 차원 다른 얘기이다. 남자인 내가 자취하면서 자기 먹을 만큼의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을 사람들은 칭찬하곤 한다. 나도 게으른 내가 요리해 먹는 것이 스스로 기특할 때도 있으므로 그런 칭찬을 기꺼이 받아먹기도 했음을 고백하지만, 참으로 부조리한 일이다.

예전에 만나던 남자와 다투어서 주말에 내 집에 평소처럼 놀러올지 안 올지도 모르겠는 상황에서 올 것을 대비해 미리 장을 보고 요리를 해야 했던 적이 있었다. 나만을 위해, 또는 특별한 날만을 위해 요리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던 내가 그 날 된장찌개는 정말 죽기만큼 끓이기 싫었다. 요리연구가 ‘빅마마’ 이혜영의 유투브를 틀었더니 그런 사람들 들으라고 이렇게 말한다. 「너무 미워도 굶겨 보낼 수는 없잖아요!」 그 말이 나를 보글보글 위로하더라. 그제야 너무 미워도 굶겨 보낼 수 없지 않느냐는 말로밖에 위로되지 않는 그 보편적이고 부조리한 기분을 이제야 백 분의 일만큼 알게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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