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상 헤드윅이 만들었다.

헤드윅을 만든 존 캐머론 미첼이 얼마 전 한국에서 콘서트를 했다. 주변의 많은 뮤지컬 팬들과 퀴어들이 간다고 신난 것을 보았다. 호들갑 방지 모드로 인해 짐짓 가만히 있었는데 나도 무척 반가웠다. 이미 너무 잘 알아서 툭 치면 나오는 레파토리라 굳이 보러 가진 않았지만 사람들이 다들 헤드윅 얘기를 하는 것 같을 때마다 노래들을 쫙 듣곤 한다.

인생이 헤드윅으로 한 번 바뀐 것은 고3때였다. 일반적인 입시와는 거리가 있어 공부에 매어 있는 상태는 아니라 애매한 자유 시간은 주어진 상태였고 사춘기 끝무렵에 새로 발견한 각자의 정체성이 너무 소중해 여기저기 오줌 누듯 취향의 영역 표시를 하고 다니던 때였다. 물론 숨겨야 할 정체성이 거기 포함돼 있던 내게 그런 점을 정확히 자극하는 헤드윅이라는 영화 DVD는 큰 기폭제였다. 방 안에서 몰래 기숙사 일괄 소등 후에 노트북으로 그 영화를 몇 번이고 보고 노래를 외웠다. 헤드윅이란 인물만큼이나 그의 상대인 토미 노시스, 나아가 이걸 다 만들었다는 미첼에 대해 복합적으로 이입했다. 그리고 같은 시기 헤드윅에 빠진, 하나같이 평소에 자기 취향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성격을 공유하는 친구 몇몇과 서로를 알아채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존 캐머론 미첼이 한국에서 최초의 해외 콘서트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부둥켜안고 예매를 했을 뿐만 아니라 잠실 공연장에 가기 전 신천역 노래방에 들러 등록된 서너 곡의 헤드윅 넘버를 열창하기까지 했다. 그의 공연은 화려하고 파워 넘치고 모든 것이 열여덟살 나를 위한 무대처럼 느껴졌다. 스탠딩석 반대쪽 저 멀리에서 서먹서먹한 사촌 형의 실루엣을 얼핏 보고, 아! 했던 순간이 선명하다. 블로그에도 그날의 기록이 있다.

이후 뉴욕으로 대학을 가고 헤드윅보다 더한 각성과 센 자극과 깊은 이념을 제공하는 갖가지 텍스트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그것에 열광했던 것이 오래 전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게이로 살기 시작했지만 되레 너무 뻔하게 게이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하지 않기 위한 발버둥도 조금씩 시작됐다. 뮤지컬에 관한 얘기들 사이에도 렌트나 헤드윅처럼 윗 세대(미국에서는)의 감수성으로 지어진 콘텐츠는 아카이브해도 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헤드윅은 렌트에 비해서는 특유의 유머와 자아도취 덕분에 오히려 시대적 변화 앞에 유연하게 윙크하거나 메인스트림 앞에서도 애교를 부릴 수 있는 곳에 위치하게 됐다. 닐 패트릭 해리스 주연의 브로드웨이 프로덕션 포스터가 앤드류 레놀즈로 교체될 즈음에 존 캐머론 미첼을 찍을 사진사로 일할 수 있나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그렇게 4년 전 우연한 기회로 한국에서 날아온 뮤지컬 잡지 기자님과 통역을 맡은 친한 형과 함께 웨스트 빌리지에 있는 존 캐머론 미첼의 집으로 갔다. 거기서 한국 팬들을 각별하게 기억하는 그의 웃음과 집을 가득 채운 소품들에 집중해 바쁘게 렌즈를 바꿔가며 셔터를 눌러댔다. 눈깜짝할 새에 인터뷰가 끝났고 별도의 인물 사진을 위한 세팅도 충분한 협의도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가능하면 잡지의 커버로도 쓸만한 표지 사진을 찍어야 하는 미션만 남아있었다. 너무나 운좋게 그의 아파트 문 앞에서 사선으로 들어오는 창문 빛을 사용해 딱 한 장 그런 사진을 건질 수 있었던 점은 당시 일기에도 기록돼 있다.

그 날은 나에게 일종의 헤드윅 졸업식, 그리고 같은 선상에서 뒤늦은 청소년기 졸업식으로 기억되고 있다. 나라는 개인의 본격 형성 시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당시만 해도 상당히 얼터너티브한 무언가로 인식됐던 헤드윅이 어느덧 브로드웨이에 전 연령 관람가로 내걸리고, 처음에 무거운 삼성노트북 스크린으로, 두 번째는 잠실 무대에서 봤던 미첼을 반쯤 고장난 내 카메라로 되는대로 찍어대기까지 세상은 얼마나 변했고 나는 또 얼마나 변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원래 글을 쓰려고 했던 건 워너원의 신곡이 헤드윅 작곡가 스티븐 트래스크의 <오리진 오브 러브>와 헤드윅 아트워크를 차용한 문제에 대해 생각을 쓰려 했던 것인데, 생각보다 그에 대한 내 보탤 만한 의견보다는 그저 나를 만든 콘텐츠에 관한 추억거리만 많다는 점을 깨닫게 돼서 그런 얘기만 적고 만다.

  1. baftera

    오래 보다 어쩐지 더 오래된 시간만에 와봤는데 여전히 찍고 쓰고 계셔서 기뻐요. 
    특히 이 글은 괜저님 머리속에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파도에 쓸리듯 밀려왔을지 알 것 같아 찡하네요.
    저도 언제 처음 봤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한번만 보지는 않았던 영화이기도 하구요. 
    오랜만에 origin of love를 들어야겠어요. 

    1. gwenzhir

      오랜만에 찾아와 주셔서 기뻐요. 옛날에 내가 이런 청소년이었다고 새 글을 쓰는데 그 때 쓴 글들도 여기 있다는 게 새삼스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