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스레 저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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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꿈에서 또 남을 실망시켰다.

또 말도 안 되는 꿈을 꾸었다. 지난 한 주 동안 세 번 이상 생생한, 실제 아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서울인 것 같은 곳을 배경으로 한, 내가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노력하지만 결국에는 크게 실망시키고 마는 꿈을.

오늘 새벽녁에 깨어 머리맡의 가습기 (가벼운 코감기가 있어 최대치로 해 놓고 잤다) 때문에 축축해진 배게를 옆의 것으로 바꾸게 한 꿈은 어떤 지하 상가같은 곳에서 펼쳐졌다. 잡다한 공산품을 다 파는 메가 몰 같은 곳, 그렇다고 ‘삐에로 쇼핑’ 처럼 정신없는 곳은 아니고, 홈 디포치고 천정이 낮아 불안감을 주는 53번가 홈 디포 지하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얼마 전 홈 디포 주식을 샀는데 한없이 내려가고 있다.)

맥락 없는 부탁도 아니었다. 내가 분명히 그 넓은 상가 어딘가에서 신박한 물건을 발견했다고 먼저 말했었다. 아이폰 스크린에 부착하면 어떠한 스크래치도 나지 않고 지문도 절대 안 묻는 궁극의 보호 스크린이었던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참으로 대단하지만 하찮은 품목이었다. 그런데 내가 안면이 있는 어떤 디자이너가 그것을 꼭 갖고 싶다고, 나더러 같이 거기 가서 찾아줄 수 있냐고 부탁했던 것이다.

부탁에 응하는 것이야 별 일이 아니지만, 왜 나는 굳이 그와 만나기로 한 것보다 삼십 분이나 먼저 거기에 가서 미리 그걸 찾아두려고 애를 썼을까. 너무 넓어 그게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도착하고 난 후에도 같이 다 뒤졌지만 없었다.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의 어떤 다른 물건들이 세로로 일렬 진열돼 있는 칸이었던 것 같다’는 기억에 의존해 계속 찾고 또 찾았으나 실패였다. 그는 실망하여 오토바이를 타고 (지하상가인데!) 떠났다.

요즘 이런 미련한 꿈을 계속 꾸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수많은 동료 모범생들과 준법시민들, ‘모델 마이너리티’들, ‘리버럴 엘리트들’(우웩)이 그렇겠지만 내가 좋아하거나 신뢰하는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일을 평생 두려워하며 살아왔는데, 최근 들어 그렇게 살아서는 평생 지하상가에만 있어야 할 것임을 깨닫고 탈피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번 주에도 연말이 되어 올해 초에 시작했던 여러 일들 중에 끝내 이룰 수 없었던 일들 몇 개의 전원을 끄는 작업을 했다. 그 일이 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몇 명을 실망시켜야 하는 일이여서 사실은 몇 주 전쯤에 했었어야 하는데 차일피일 미루긴 했지만, 침 꿀꺽 삼키고 실망시켰다.

The Nightmare — Henry Fuseli (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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