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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인생 자평

작년에 이어 같은 방법으로 한 해에 대한 평을 쓴다. 나 스스로를 위한 가감없는 〈2018 인생 자평〉을 먼저 길게 쓰고 나서, 검열과 가공을 거쳤다.

0. 총평

2018년은 내가 지난 10여 년 간 「어쩌면 나와는 관련없는 일일지 모른다」고 생각해 왔던 일반적인 인생의 측면들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나의 상을 발견하고 자세를 고쳐 나갔던 한 해였다. 나는 지금 내 생애를 살고 있는 나이지, 내가 주워들은 것들의 총합이 될 수 없고 내가 좋은 인상을 남겼던 사람들 기억 속의 나와도 무관하며 끝내 뇌내 서사 속의 나라는 주인공도 아니라는 평범한 사실을 호들갑 떨며 깨닫게 된 해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2018년의 결과로 나는 조금 더 평범해졌고 더 이상 「내가 되어내야만 하는 내 이상 속의 나」를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1. 건강

드디어 운동하는 습관을 조금씩 들여가고 있다. 집 한쪽에 체육관용 매트를 깔고 최소한의 기구를 들여 주 2~3회 아침에 가볍게 운동한다. 남들 앞에서 못하는 운동 하기를 두려워하는 나에게 내린 홈짐이란 처방은 얼추 들어맞고 있는 것 같다. 운동량이 많지 않지만 워낙 안 하던 과거의 나와 대비하면 조금씩 몸이 나아지고 있는 것을 체감한다. 또, 어깨와 목이 작년보다 펴진 것 같다.

신진대사량이 낮은 점을 운동으로 극복하지 않고 음식을 줄이던 습관을 버리기 위해 노력하니 식사량도 늘었다. 먹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이 줄었다. 몸무게는 작년에 비해 4kg 정도 더 늘었지만 만족한다. 전신 거울로 체형을 매일 보는 것이 몸을 긍정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됐다. 내 몸의 장점과 단점을 알게 되고, 단점도 잘 알지만 장점을 이유로 내 몸을 좋아하게 됐다. 내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 생각보다 큰 심리적 장벽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사랑니 1개를 뺐고, 어금니 충치 하나를 발견해 치료했다. 전반적으로 건강하다.


2. 살림

2년만에, 그리고 서울에서는 처음으로, 자취를 재개했다. 좁은 원룸 오피스텔이지만 기차역을 직각으로 굽어보는 탁 트인 시야가 대만족인 곳이다. 서울, 그것도 나의 활동 범위 중심인 용산에 일 년 가량 살다 보니 이 도시와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고 있는 실감이 난다. 신용산역, 동부이촌동, 녹사평과 해방촌, 후암동 등 인접한 동네들에 정이 많이 들었다. 쉴 틈 있으면 무조건 나가 돌아다닐 수 있는 위치에 살고 있어 좋다.

물론 빌트인이어서 양껏 세간을 만들며 살지는 못하고 있지만, 앞서 썼듯 창문 쪽을 홈짐 겸 다용도-구석으로 꾸미고, 화분 일곱 개를 들여 식물원처럼 해 놓고 사는 데 퍽 만족한다. 부엌도 손바닥만하지만 전자레인지 겸 오븐을 두어서 원하는 요리는 대부분 할 수 있다. 하루 두 끼를 요리해 먹는 건 유학 시절에도 좀처럼 없던 일인데 요즘엔 흔하다.


3. 인연

2018년 상반기는 내가 감히 「본격적인 연애」라고 할 만한 연애를 하며 보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반 년 동안, 서로 너무 다르지만 가끔은 반대이다 못해 비슷한 그런 동년배 남자 둘이 사랑과 상처를 주고 또 받으며 참 기억에 오래 남을 연애를 한 것 같다. 매일 만나거나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는데도 만나는 동안 생활의 큰 부분을 연애가 차지했던 까닭에 상반기에는 거의 연애하거나 일한 기억밖에 없다. 끝나고 난 뒤에 약간의 휴유증이 있었지만 이 일을 통해 나는 내가 얼마나 사사로운 감정과 자존심 그리고 호르몬 앞에 무력한 한낱 인간, 애정을 필요로 하는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결과 이제 좀 인간처럼 울고 웃는 것 같다는 주변인들의 칭찬도 듣고 산다.

새로운 친구가 생기거나 있던 친구가 없어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여름에 한국까지 와서 결혼한 캐롤과 잭슨, 그리고 이들이 데려온 하객 무리들과 보낸 시간을 올해의 하이라이트 1번으로, 그리고 오랜만에 서울에 놀러온 해리와 함께 간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엄마까지 만났던 시간을 2번으로 꼽고 싶다.

가족들과는 여전히 좋다. 거의 매 주말마다 하룻밤은 본가에 가서 자고, 일어나 아침 먹고 나서 보드게임 한 판 하고 올라오는 정겨운 레파토리가 있다. 친척들까지 확장하면 이런 저런 변화가 많았던 해였다. 내가 합창단 공연을 보는 중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처럼.


4. 생산

직장인 텀블벅에서는 만 3년째 근속 중이다. 조직에 필요했던 경력자들이 합류하면서 하는 일에 조금 더 확신이 생겼다. 물론 모든 좋은 성장이 그러하듯 순탄하지만은 않았으나, 불편하지만 필요한 결정들을 함께 내리고 따르는 데 필요한 자세가 조금 더 좋아졌다. 가장 최근에 맡아 하고 있는 일은 비영리·소셜 섹터 크라우드펀딩을 활성화하는 것인데 새로 배우는 점이 많다.

글 쓰고 말하는 나로서는 큰 보람과 약간의 아쉬움이 함께한 해였다. 6월에는 ⟪글짜씨 17: 젠더와 타이포그래피⟫에 ⟨젠더, 창작, 그리고 돈: 페미니스트와 퀴어의 텀블벅 프로젝트⟩를 썼고, 7월에는 보스토크 매거진 10호 ⟪Urban Space: 도시건축탐험⟫에 ⟨내 도시 공부법⟩이라는 에세이를 썼다. 작년에 이어 11월에 ⟪리워크 컨퍼런스⟫에 참여했고, 월간 ⟪현대문학⟫ 11호에는 ⟨알아서 나온 책들⟩이라는 제목으로 확장하는 독립 출판의 세계에 관한 글도 썼다. 재미있는 글을 쓸 기회가 점점 늘어 행복한 고통 속에 보냈던 것과 동시에, 서울의 젊은 독립 창작자들을 인터뷰해 한 온라인 플랫폼에서 연재하기 위해 준비하던 프로젝트를 절반 가량만 끝낸 채 중도 포기해야 했던 것은 송구스러운 기억으로 남았다.

2017년 말에 3인의 동료들과 함께 시작한 비영리 단체 ⟪프리랜서 네트워크⟫는 약 6개월 동안의 1기 활동을 마무리하였다. 매달 다양한 직종과 경력의 프리랜서들을 모아 ⟨프리랜서도 프리랜서가 궁금하다⟩라는 제목의 모임을 열고, 서울시와 함께 프리랜서 현황 파악 및 조례 신설을 위한 밑작업을 미미하게나마 시작했다. 프리랜서들에 관한 관심의 방향과 정도가 각기 다른 주체들이 모여 사안을 알아가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본 것에 대해 반의 반의 성공 정도로 자평하고 있다. 1기 마무리 후 나는 실무에서 물러났다.


5. 여행·문화

자취와 함께 혼자 있는 시간에 대한 욕구가 해소되다 보니, 2017년에 비해 여행은 줄였다. 해외에는 한 번 나갔는데, 연애 직후 심심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간 쿠알라 룸푸르는 여행지에서도 일 생각하는 나쁜 버릇을 없애기 위한 시도가 제법 성공적이었던 곳이었다. 직장 역사상 처음이었던 춘천으로의 1박 2일 워크샵도 재미있었다. 8월에는 부모님과 함께 여수와 순천만에서 행복하게 종일 걷다 왔고, 11월에는 네 번째 부산 여행을 완수했다.

겨우 20편의 영화를 그것도 막판에 스퍼트까지 동원해 극장에서 본 한 해였다. 지인들의 음악회나 발표회에 간 일은 꽤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공연이나 콘서트를 가서 본 적은 별로 없었다. 뉴욕에 살 때와 가장 다른 점이기도 하다. 어떤 공연을 가도, 심지어 라이브 재즈가 있는 어떤 바에만 가도 만족했던 그런 도시가 아니라고 해서 불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몇 권의 책을 읽었는지 세지 않았지만 문학과의 냉전 상태였던 2017년에 비해서는 그래도 소설과 시를 읽었다고 할 수 있는 정도다. 물론 이 중 많은 작품들은 문예지에 글을 써야 하는 난감함 속에서 냉전 해소를 위해 서점에서 단편집과 문예지를 쓸어담아 닥치는 대로 읽었던 가을 동안 소화한 것들이었다. 그래도 최근 주목받는 한국어 작가들의 작품들을 더 많이 접한 것이 기쁘다.


6. 배움

일단 운전면허를 필기까지만 따 놨다. 결국 실기는 2019의 몫으로.

사실 2018년의 가장 큰 배움 키워드는 돈이다. 얼마 전에도 썼지만 경제관념이란 워낙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혼자만의 의지로 개량할 기회가 많지 않다. 올해 몇 가지 계기가 되는 일들이 있었기에 개인 재무에 대한 감각을 키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책을 사 읽고, 영상도 보고, 돈에 밝은 지인들을 괴롭혔다. 특히 도심 자취를 하다 보니 부동산에 대한 관심에 확 불이 붙어서 휴일에 카페가 아니라 시세를 보러 안 가본 동네들을 돌아다니는 짓을 반복하기도 했다. 현대인의 현실에 워낙 큰 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이라는 주제를 갖고 도시를 다시 보니 마치 매직아이에 성공한 것 같은 묘한 통찰을 느끼게 된다.


내가 태어난 지 30년이 되는 해를 보내며, 나라는 사람에 대해 이제 더 이상 머리속에 앉아서 자신-공부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이용해서 여기 저기 가 보지 않은 곳들을 여행하고 갈 데까지 나아가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새해를 연다. 이 블로그를 위한 아이디어도 예전과 다른 것들로 준비되어 있다. 2019년은 가만히 두어도 예전과 다르겠지만, 얼마나 충격적으로 유익하게 다를 것인지는 나의 결정과 실행에 따를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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