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패드 생기니까 틈틈히 그림 그리게 된다.

초등학교 친구들은 나를 세일러문하고 포켓몬 그리던 애로 알고 있지만 손으로 뭘 그리는 습관이 사라진 지 오래 되다 보니 이제는 그림 그리는 일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최근에 아이패드 프로와 애플 펜슬을 사게 되고, 그걸로 회사 에 급히 필요한 그림도 그리고 하다 보니 옛날 습관이 다시 돌아오는 것도 같다.

블로깅을 통해 늘 해온 글쓰기나 사진 찍기 같은 건 잘하겠다는 욕심 없이 편하게 매일 할 수 있는데 반해, 유독 어릴 때 하던 ‘미술’ 이나 ‘음악’에 해당하는 건 거창하게 느껴져 왔다. 피아노도 안 친 지 오래고 그림도 그렇고… 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는 일이라는 생각, 또 왠지 가지 않은 길에 미련을 갖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일까? 미국에 처음 갔던 12살 때 말 안 통하는 친구들에게 포켓몬 그림 그려 주던 기억, 고등학교 때 소등 후에 친구들과 밤에 몰래 기숙사 방에 모여서 미디로 찍어 온 루프를 깔고 말도 안 되는 노래들을 불러서 녹음해 돌려 듣고 하던 기억들이 떠오르면 ‘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즐거움을 주는 일들을 맘대로 찾아서 하던 그 용기가 다 어디 갔나 한다.

월요일 저녁 퇴근 후에 당근 썰어서 땅콩 버터에 찍어먹고 웃긴 팟캐스트 들으면서 그림을 그리니까 제대로 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