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스레 저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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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주도를 좌우로 돌고 남북으로 가로질렀다.

제주도는 나에게 어떤 곳인가? 우선 2006년에 대학 원서 제출을 준비대로 마치고 나서 가족 여행을 떠났던 곳이다. 그런데 여행중에 우연히 뉴욕대는 원서 제출 기한이 나머지 학교들보다 좀 더 길다는 것을 깨닫고 갑자기 계획에 없었던 학교였지만 원서를 넣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식구들이 테디베어 뮤지움에 간 동안 혼자 남아 호텔 사무센터에서 원서를 접수했고, 결국은 우여곡절 끝에 원래 원서를 넣으려고 했던 합격 학교들을 제치고 그 학교로 가게 되었다. 제주도 여행을 안 갔더라면 다른 학교로, 따라서 뉴욕이 아닌 지역으로 진학하게 되었겠지. 마라도에 바람이 무척 많이 불었다.

그 다음에는 2015년에 <디어 매거진> 5호 화보와 인터뷰 촬영을 하러 갔었다. 여행으로는 가 보기 힘든 특색있는 행선지들을 팀원들과 내내 웃으면서 다녔기 때문에 온통 즐거움이었다. 마지막으로는 이듬해에 천적 부부의 결혼 사진을 찍으러 갔었다. 절친의 행복한 순간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하고 연출하고 기록할 수 있는 기회였으니 당연히 행복했는데, 네 명이 한 팀을 이뤄 렌트카로 의상이며 장비를 싣고 숲이며 바다며 오름이며 같이 다녔다.

이번 제주행은 남자친구 S와 함께다. 사실 만나기 시작한 지 몇 주 되지도 않아서 여행을 가기로 한 것이었다. 호감과 별개로 사람이 가까워지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한데, 충분히 가까워서 여행을 떠난다기보다는 여행으로 더 가까워져 보자는 생각이 공유되었던 것 같다. 지난주 제주 여행을 간 서울 사람들이 나나 S 주변에도 너무 많아서, 누군가 필경 마주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사람보다는 조랑말과 까마귀를 더 많이 마주쳤다.

무면허 두 남자가 짝을 이뤄 첫날은 탑동에서 애월, 한림을 거쳐 서귀포까지 섬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반 바퀴 돌고, 둘째날은 남으로부터 한라산을 윗새오름을 통해 올랐다 제주시로 내려온 다음 시계 방향으로 함덕, 구좌, 성산을 거쳐 다시 서귀포로. 버스와 택시에 의존해 이만큼 흩어진 곳들을 다 돌아다녔다니 우리는 대단했다. 평소에 사진을 찍고 서점을 좋아하는 것 같은 몇 가지 기본적인 점들이 비슷하다 보니 거기에 맞는 행선지 위주로 움직인 덕이다. 한림 ‘모디카’에서 S의 생일을 기념하는 맛있는 저녁을 먹은 것도 무척 좋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제주에서 사람들이 재밌게 꾸며놓은 곳들 위주로 다니면 실망할 위험도 클 것이라 판단해 중간날에 부리나케 산부터 오른 것이 특히 좋은 결정이었다. 일단 자연을 보고 나니 딱히 불평할 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말 안 되는 말을 하는 택시 기사들이 있었지만 우리 마음 속에서 그들의 순위를 매겨버리면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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