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설렁탕 국물이 어려웠다.

태어나서 전골 같은 걸 만들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일단 국물 요리를 원래 선호하는 편도 아니거니와 집에서는 더욱 안 한다. 밥이나 면을 말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해 봤자 찌개를 끓이거나 걸쭉한 수프를 만드는 정도다. 그리고 기름을 안 쓰면 요리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아서 거의 항상 팬이나 오븐이 중요한 요리만 하는 편이었다. 내가 이런 입맛인 줄은 모든 걸 습하게 해 먹는 홍콩인과 사귀던 시절에야 깨달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나베나 훠궈, 어복쟁반 같은 음식 맛을 더 좋아하게 되면서 데치듯 살짝 끓여서 맛을 내는 음식을 집에서 해 먹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제니가 고맙게도 냉동 설렁탕을 몇 봉지나 선물해 줬다. 두 끼 정도는 수육과 도가니를 곁들여 설렁탕답게 밥과 먹었지만, 그 다음부터는 다른 걸 만드는 데 쓰고 싶었다. 즉흥적으로 하나로마트에서 대충 보이는 것들을 담아 왔다. 배추, 부추, 팽이버섯, 얇게 썬 양지. 이렇게만 그야말로 때려넣고 설렁탕 국물 넣고 간장으로 간 하면서 끓여 봤다. 맛과 색이 형편없었다. 희뿌연데 간장을 넣으니 탁한 라떼색에, 배추와 부추와 버섯 각각 최적의 익힌 정도를 과감하게 빗나가 있었고 고기는 물론 기름기 하나 없이 뻣뻣했다.

맛없는 걸 냄비 하나 가득 만들었기 때문에 다 먹기까지 이틀이 소요되었고, 나는 평촌 본가로 후퇴해 대열을 가다듬었다. 엄마는 뽀얀 설렁탕 국물은 부대찌개를 끓이거나 최소한 김치를 넣으라고, 그걸로 전골은 아니올시다라고 조언했다. 말을 듣고 집에 오는 길은 흐리고 비가 내렸다. 집에 와서 냉장고를 여니 녹혀 놓은 설렁탕 한 봉지와 썰어 놓은 배추와 부추 사이로 샐러드 하려고 사다 놓은 토마토, 그리고 밥 반찬이 궁해서 1+1 하는 걸 사 놓은 굵은 비엔나소세지가 보였다.

이번에는 배추와 부추를 식감이 거슬리지 않게 좀 더 잘라서 넣고 남은 소세지를 다 부었다. 그리고 토마토를 껍질 벗겨 적당히 넣었다. 소금 후추 간 해서 끓이자 소세지의 기름기와 토마토의 색이 적당히 우러나 맛있어 보였다. 먹어보니 고소하고 달달한 설렁탕-배추 국물에 필요했던 것이 바로 신맛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분 좋게 두 사발이나 먹고 오후에 한 숨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