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스레 저렇게

괜스레 저렇게는 김괜저(@gwenzhir)의 블로그이오니 잘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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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돈을 되찾았다.

날이 좋아 뉴악 공항으로 하강하는 비행기 속에서 맨해튼 스카이라인이 또렷이 눈에 들어왔다. 숙소인 윌리엄스버그까지 전철로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기도 하고 큰 여행가방이 걸리적거리기도 해서 우버를 불렀다. ‘산자’라는 이름의 기사가 널찍한 승합차를 몰고 나타났다.

많이 막혔다. 타고 온 비행기가 네 줄 짜리 작아서인지 멀미를 좀 했어서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등받이를 완전히 젖히고 곯아떨어졌다. 홀란드 터널을 통과해 맨해튼에 들어올 때에야 툭 하고 뭔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에 잠에서 깼는데, 여권이었다. 하마터면 여권을 우버에 두고 내릴 뻔 했네, 안도하며 챙기고 다시 잠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천 달러 넘는 현금 봉투를 우버에 두고 내렸다. 여권과 함께 내가 벗어 들고 있던 자켓 안주머니에 들어 있었는데, 내가 둘 다 떨구고 나서 여권만 챙겼던 것이다.

달러를 현금으로 그렇게 많이 들고 올 생각은 결코 없었다. 예전에 미국 여행을 위해 환전해 놓고 남은 자금을 내게 증정키로 한 부모님의 선물이었다. 「여행이니까 거기 살던 시절처럼 돈 때문에 고생하지 말고 편하게 쉬고 와라」

에어비앤비 숙소에 짐을 다 풀고, 샤워를 하고, 저녁 약속에 갈 채비를 하던 중에서야 거액을 잃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오후 내내 쨍쨍하던 하늘이 거짓말처럼 꺼지더니 천둥이 치고 소낙비가 쏟아졌다. 밖으로 나가 비를 맞으며 차에서 내리고 짐을 꺼내다 길바닥에 흘린 것은 아닌지 확인하고 나서 우버에 두고 내린 것이 유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버를 이용하고 분실물이 생기면 원칙적으로 기사에게 직접 연락해서 되찾기를 시도해야 하는데, 로밍 중이었기 때문에 설상가상으로 국내 통화만 지원하는 우버 앱 내 전화연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흰 봉투에 담긴 현금을 통째로 잃어버린 것이었기에 다시 찾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비관에 힘이 실렸다. 다행히 저녁 약속 상대는 여러 차례 크고 작은 생활의 위기를 같이 겪어낸 캐롤, 잭슨과 제니였기 때문에 그들의 전화번호를 빌려 연락을 시도했다. 2시간 정도 지나 ‘산자’와 연락이 닿았다. 러시아 출신 이민자인 산자는 간곡한 내 설명을 잘 알아듣지 못했는데, 몇 차례나 다시 통화한 끝에 그가 봉투를 확보했으며 내일 브루클린으로 가져다 줄 의사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기적이라 판단되어 와인을 많이 마셨다.

이튿날 아침에 거실에서 물 한 잔을 신중하게 마신 다음 장문의 문자를 작성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어제 당신 차에서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나에게 그 물건을 되돌려 주기로 해 주셔서 무척 감사합니다. 그런데 나는 미국 전화번호가 없습니다. 나와 통화를 하려면 내 친구 아무개의 이 번호로 전화를 주셔도 되지만, 우리 둘 다 아이폰을 쓰는 것 같으니 아이메시지나 페이스타임 오디오로 연락주시면 가장 좋겠습니다. 나는 당신이 나를 내려놓은 윌리엄스버그에 있습니다만 당신에게 편한 곳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적당히 지나가고 나서 일곱시 반쯤 숙소 앞에 그의 차가 도착했다. 그와 나는 손짓 발짓으로 이것이 얼마나 천방지축한 일인지에 대한 느낌을 표현했다. 그는 내가 자진해서 그에게 주려고 했던 사례비의 정확히 두 배를 이미 봉투에서 빼서 따로 간직하겠다는 의사를 마찬가지로 손짓 발짓으로 표현했다. 그래요 가지세요, 나는 답했다. 내일부터는 여행이니까 돈 때문에 고생하지 말고 편하게 쉬고 싶군요.

  1. 깔끔하게 남은 돈 잘쓰고 가세요! 

    • 김괜저

      말끔히 남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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