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스레 저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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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산에 여덟 시간 있다 왔다.

토요일 오후에는 전날의 여파로 몸이 좀 쑤시고 마땅히 하고 싶은 일이 없어 늘 하던 고민들만 습관처럼 뒤적이며 있었다. 그 중 특히 오랫동안 행동은 없이 갖고만 있었던 고민 한 개가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개운하지 않았다. 기필코 오늘은 그 혹을 떼어 버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철길을 따라 걸어도 보고 노래방도 갔는데 당연히 떨어지지 않았다. 고민을 그만 해야겠다는 다짐은 고민 해결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평소처럼 아침 여섯시에 눈을 떴다. 어제 윤미래 주현미 심수봉 노래를 너무 열심히 부른 탓에 목이 칼칼했다. 며칠 전 점심 시간에 동료들에게 주말에 바다나 보러 갈까 싶다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부산에는 바다도 있고, 주말간 독립 출판 행사도 열린다고 했다. 7시에 8시 기차를 예약하고 바로 뛰쳐나갔다.

당일치기 부산 여행은 몇 년 전에 한 번 출장을 겸해 해본 적이 있다. 그 때는 확실히 무리였지만 지금은 아닌 가장 큰 이유는 KTX 선로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광명역에 도착하면 집까지 추가로 한 시간 반이 더 족히 걸렸지만 지금은 부산행은 이십오 분, 목포행 강릉행은 오 분이면 갈 수 있으니 놀랄 노 자다.

부산역에 도착한 열 시부터 다시 부산역을 출발한 다섯 시까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움직였다. 호텔 로비에 딸린 커피숍에서 마시면서 글 좀 썼다. 새로 생겼다는 민물장어 덮밥집에서 시키는 대로 밥을 사등분해서 먹었다. 교보문고에서 산문집 하나 사서 광안리 해변에서 반, 영도에 전망 좋은 카페에서 반 읽었다. 부산 아트 북 페어에 가서 책 사고 사람들 만났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완성될 듯 잘 완성이 되지 않는 그림 하나를 옆사람 아랑곳않고 북북 문질러 색칠을 하고 있으려니까, 갑자기 토요일 종일 내 종아리를 그렇게 붙잡고 놓아주지 않던 고민 덩어리가 실종되었음을 알았다. 해변인지 골목인지 몰라도 부산 어딘가에 두고 그냥 온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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