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르는 것을 내버려 두어야 한다.

글이 안 써지는 날은 그럭저럭 평범하게 살살 가슴이 아플 뿐인데, 글이 잘 써지는 날은 잘 써지는 날대로의 새로운 고통이 있다. 상식적으로 글을 잘 쓰려면 나를 좀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서 내려놓는다고 내려놓는다. 운이 좋으면 앉은 자리에서 반 바닥, 한 바닥을 쓴다. 쓴 것에 바로 손대지 말기로, 뒤돌아보지 말기로 결심하고 화장실을 다녀온다. 다녀와서 나와의 약속대로 끝까지 쫙 써낸다. 기분이 째진다. 비를 그냥 맞으면서 집에 온다. 그러고 다음날 읽어본다. 친구에게도 보내본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 글 하나를 썼어! 놀랍지 않니? 어때? 친구가 잘 읽었다며 박수를 보낸다. 좋은 친구이기 때문에 박수 끝에 핵심을 꿰뚫는 조언도 하나 보낸다. 끄덕이게 된다. 수긍이 되는 좋은 조언이다. 내용인즉슨 나를 좀 더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글쓰기에서 한 번 듣고 소화했으니까 다시 듣지 않아도 되는 조언은 없다. 마치 테니스 선수한테 ‘공을 끝까지 봐’라고 조언하는 것과도 같다. 언제나, 어디서나, 평생 들어도 부족할 말이다. 글을 계속 써. 일단 너를 내려놓아 봐. 쓰고 나서 다시 써. 이번에는 더 내려놓아 봐. 그냥 너라는 사람이 없어도 좋을 정도로 내려놓아. 아니, 글을 쓰고 생각을 하고 나를 돌아보는 내가 너무 대견하고 글을 통해 맞춰지는 내 인생의 퍼즐 조각들이 주는 쾌감이 이렇게 큰데 어떻게 내려놓을 수 있느냐는 말이다. 나는 내 차례상도 내가 차려야 할 사람인 것 같다.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 분명 도움이 될 텐데 자꾸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까, 내 글이 내 떼라피스트인 것으로 착각에 빠지기 쉽다. 글을 쓰다 보면 당연히 내가 과거에 어떤 일에 어떻게 반응했고 그로부터 어떤 습관을 들였는지에 대해 탐구하게 되고, 새로운 인과관계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고 ‘아하 나라는 사람은 이러이러해서 이러이러하게 되었구나 호기심 해결이다’라는 내용으로 글이 정신과로 빠져서는 아니된다. 그 때 몰랐던 것과 지금도 모르겠는 것, 미스테리인 것을 미스테리로 가만 좀 내버려 두고 그 텅 빈 미지의 공간이 지면에 ‘고오오’ 같은 사운드 이펙트와 함께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1. 에린

    괜저님 저 에린인데 이글 너무 좋아요오

    1. 김괜저

      너무 오랜만이에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