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랜만에 걸어서 퇴근했다.

이 글은 오로지 오늘 걸어서 퇴근했다는 사실을 기록해 두기 위한 글이다. 예전에 회사가 을지로에 있었을 때에는 금요일에 종종 걸어서 퇴근하는 호사를 누리곤 했는데 강남으로 옮기고 나서는 거리도 멀고 걷기 좋은 길이 아니기도 해서 그럴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퇴근 후 강남 사무실에서 출발해서 먼저 저녁 식사를 위해 신논현역 할랄가이즈에 들렀다. 치킨 플래터에 허머스 한 스쿱을 추가해서 먹었다. 그 다음은 논현동 골목을 통과하고 반포자이 앞으로 돌아서 강남지하상가까지 간다. 사실 고속터미널까지 걷는 날은 종종 있었는데 여기서 보통 주의가 분산되어 더 걷기를 포기하곤 했다. 오늘은 저녁이 되어 하루를 정리하는 분위기의 차분한 지하상가를 그대로 통과해 신반포 쪽으로 뚫고 나가니 걸음이 느려지지 않았다.

동작대교 부근은 사당 쪽에서 올라오면 결코 걷기 좋은 구간이 아니지만 반포 쪽에서 오면 한강공원으로 연결된 좋은 보행로가 있다. 콧노래를 부르며 걸으라고 이름이 ‘허밍웨이’라고 되어 있고 레이저로 가짜 반딧불이 싸이킥하게 설치되어 있다. 어쨌든 동작대교에 올라 한강라운지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먹으면서 다리를 건넌다. 한강 다리는 언제나 생각보다 더 길다. 동작대교 북단에서 동이촌동으로 내려가는 길은 조금 어두침침한 면이 있지만 잠깐이다. 이촌동에서 집까지는 평소 산책길.

7시에 강남역에서 퇴근해 저녁 식사 시간 30분 제외하고 약 90분간 17,000여 걸음 걸어 신용산 집에 도착한 것이 된다. 동작대교를 파워 워킹하면서 립씽크를 하도 했더니 입만 움직였는데도 목이 쉰 것 같다. 즐거운 평일 저녁.

  1. 슈게이징

    저도 동작대교를 종종 걷는데 상점에서 아이스크림 살 생각을 안했습니다. 좋은 아이디어 네요

    1. 김괜저

      그렇죠! 미세먼지 많아지기 전에 얼른 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