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스레 저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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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속초에서 틀어박혔다.

바르게 살아야 한다. 옥생활에 소질 없을 것 같다. 회사에서도 한 시간에 한 번씩 사무실을 나와 로비에서 기지개를 켜야 한다. 휴일에 집에 있더라도 영화를 보거나 요리를 하거나 대청소를 하거나 하는 식으로 뭔가에 몰두하지 않으면 즉각 산책을 하고 싶어진다.

기간 내 리조트 할인권을 쓸 겸, 여름의 끝을 조용히 기념할 겸 해서 속초 울산바위 앞에 있는 대명 델피노 리조트에 내려갔다. 가족 주말 여행으로 여러 번 간 적 있는 곳인데 운전하지 않는 나 혼자는 처음이었다. 평창 강릉은 기차로 너무 쉽게 갈 수 있게 됐지만 속초는 그렇지 않아서 리조트 셔틀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공항리무진이 아닌 대형 좌석버스가 참 오랜만이었다. 교통 좋은 곳에 두 해째 살고 있다보니 어느새 면허를 따려던 생각이 다시 흐려지던 참이었다. 차는 없어도 면허는 있어야 하니 얼른 따야지.

휴게소에서 이미 좋다.

태풍이 북상하고 있었지만, 앞 마당에 마련된 빈백에 누워 울산바위를 마주하고 책을 읽기에 탁월한 시원하고 흐린 날씨였다. 너무 햇빛이 셀 때 야외에 나가면 책은 얼굴가리개로 써야 하는데, 적당히 흐린 날에 축축하지 않게 풀밭에 누울 수만 있다면 책 한 권이 후루룩 넘어간다.

그러나 늦은 오후부터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A동, B동, C동을 지하 연결통로로 오가는 본격 인도어 휴가가 시작됐다. 문을 걸어잠그고 한두 시간 글을 쓰다가 나가서 밥을 사먹고 오고, 넷플릭스로 〈타짜〉를 보고 나가서 츄러스 하나 사먹고 오고 하는 식이었다. 속초 시내에 나가지 못한 것이 아쉬울 줄 알았는데, 아는 사람도 없고 내가 가져온 것 말고는 할 것도 없는 곳에서 평소 하던 것처럼 촐랑촐랑 돌아다니지 않고 24시간 정도 가만히 있어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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