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혼 이야기〉가 다 좋은데 하나가 거슬렸다.

최근 한 달간 거의 매일 듣고 또 들은 곡인 〈Being Alive〉를 아담 드라이버가 부르는 장면이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우산도 없이 빗길을 뚫고 아트하우스모모로 달려갔다.

노아 바움백 영화를 볼 때면 내게 소설쓰기를 가르친 뉴욕 유대인 헤테로 남성 작가 교수들이 생각난다. 사람 사는 얘기를 나보다 더 잘 하는 것 같다는 존경. 손에 든 것보다 머리에 든 게 많아 결코 심플하게 살 수는 없이 복잡하게 생각하는 저주에 걸린 교육받은 비주류로서의 동질감. 그러나 한끗 비주류라 쳐도 나처럼 더한 소수자가 동질감을 갖는다면 민망한 일이기에 느껴지는 참을 수 없는 거리감.

15년 전 〈오징어와 고래〉는 특히 그런 냄새가 심해서 넋을 잃고 보고도 덮어놓고 좋아한다 하기에는 애매한 영화였다. (제시 아이젠버그는 내겐 그런 애매함이 사람이 된 것 같은 배우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레타 거윅과 함께한 〈프란시스 하〉와 〈미스트리스 아메리카〉는 그런 애매함을 뚫고 그의 재능을 순진하게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결혼 이야기〉는 그가 그레타 거윅을 만나기 전 부인이었던 제니퍼 제이슨 리와 이혼한 경험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이야기이니만큼 그 때 그가 만들던 영화의 느낌을 더 강하게 풍긴다. 하지만 덜 자기(아담 드라이버)중심적으로 느껴지는데, 스칼릿 요한슨의 연기 덕이 크다.

서로에게 쌓인 건 있어서 헤어지지만 상처주고 싶지 않아하는 것 같았던 남녀가 몇 년간의 기혼생활을 실행취소하는 불가능한 일 앞에서 결국 헌 상처 새 상처 다 주고받는 그런, 현실적인 얘기다. 얼마나 현실적이냐면 아담 드라이버가 그 노래를 부를 때쯤에 가서는 결혼이란 해 본적도 진지하게 고려해 본 적도 없는 나도 이게 대체 다 뭐란 말인가 하는 감정 폭풍을 겪게 된다.

그가 부른 〈Being Alive〉는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뮤지컬 작가인 스티븐 손드하임의 1970년 뮤지컬 《컴퍼니》 대표곡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뉴욕에서 35살 먹도록 독신인 바비, 그리고 그를 둘러싼 다섯 쌍의 기혼자 친구들이다. 많은 관객들이 바비를 게이로 여겼고, 최근 런던 프로덕션에서는 여자로 바뀌기도 했다. 《컴퍼니》는 정말 끝까지 비혼으로 살 건지, 마음이 바뀌진 않을지, 바뀐다면 두려움 때문일지 열정 때문일지 등 2019년 김괜저가 쓰려고 하고 있는 글의 주제들을 그대로 담고 있는 사십년 전 작품이라서 그렇게 듣고 또 듣고 있었던 것이다.

가사가 처음에는 「너무 날 귀찮게 하고 너무 내게 상처를 줄 사람을 왜…」로 시작해서 후렴에서는 「누가 좀 날 귀찮게 하고 누가 좀 내게 상처를 줘」라고 울며 끝나는 이 노래는 내게 결혼, 그리고 평생을 누구와 함께 살고 싶다는 마음에 대한 나의 ‘모르겠고 오락가락하는 마음’을 가장 잘 대변하는 노래다.

그래서 날 웃고 울린 이 영화에 근사하게 쓰인 것이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민하는 독신주의자의 주제곡이 이혼 이야기에 쓰인 것, 그리고 내가 책에 쓰기 전에 더 많은 사람에게 들려줘 김을 뺀 것에 대한 개인적인 괘씸함을 느껴버렸다. 마음 속으로 항의한다.

  1. baftera

    덕분에 결혼 이야기 보면서 노래 귀담아 들을 수 있겠네요! 
    근데 폰트 바꾸셨나요? (바꾸신지 오래라면 실례겠지만;;;;) 
    전엔 명조 느낌이었던 것 같아서요.  
    지금 폰트 좋아요. 오늘 넓은 폰트가 눈에 밟히네요. 
    쏜살문고의 다니자키 준이치로 책들도 폰트가 아주 이~~뻐요. 

    1. 김괜저

      네 맞아요. 이따가 서점 가는데 쏜살문고 구경해야겠어요.

  2. baftera

    전 왜 이런 명곡을 그냥 지나치고 폰트얘기만 했었죠!?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그는 비혼자는 Being Alive 들으며 눈물을 닦았습니다.
    나중에 괜저님이 쓰실 ‘모르겠고 오락가락하는 마음’이 기대되네요.

  3. 오랜만에 들러서 재밌는 리뷰를 읽고 갑니다. 잘 지내고 계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