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았다.

격리를 마쳤다. 첫 사흘간은 끙끙 앓았다. 열도 많이 나고 인후통도 심했다. 타이레놀 많이 먹었다. 코코넛물을 계속 마셨다. 샤워하고 습관적으로 향수를 뿌렸는데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을 때에는 식겁했다. 다행히 후각은 곧 돌아왔다.

할아버지 장례식이 계속되는 동안은 아무리 집에 있었지만 마음껏 쉴 기분은 아니었다. 정말 오랜만에 책을 붙잡고 착실하게 읽었다. 그리고 내가 쓰고 있어야 할 글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했다. 무언가에 대해 골똘히 시간을 들여서 생각할 기회는 좀체 오지 않는다.

귤 친구들과 함께 지냈다. 소중한 친구들이 한라봉과 천혜향, 낑깡을 보내주었다. 낑깡이 특히 소중했다. 나는 자몽을 주문했는데 같은 귤류라도 자몽은 아플 때 좋지 않다는 얘기도 있더라. 자몽에 꿀 뿌리고 페타 치즈와 해바라기씨를 끼얹어 먹으면 맛있는걸.

장례가 끝나고 한시름 놓고 나서는 나도 기력이 회복되어서 집안일을 이것저것 했다. 너무 밝아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LED 패널등이 있었는데 여기에 종이로 모자이크를 해서 현판처럼 부엌에 매달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왠지 이런 생각은 열이 날 때에만 찾아오는 영감인 것 같아서 빠르게 실행에 옮겼다. 해리에게 부엌에 걸 만한 단어를 정해 달라고 했더니 단번에 웍헤이(鑊氣)를 골라주었다. 맛있게 맵고 불맛 연기맛 나는 그림을 그리면 되겠다 싶어 집에 있던 색도화지를 오려붙여 한 시간 만에 완성했는데 매우 흡족스럽다. 이로써 나는 병 걸린 동안 아트를 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신발장 문짝도 달았다. 현관이 부엌 바로 옆이라 음식 만드는 곳과 가까운 데에 신발이 문도 없이 보관돼 있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었는데. 신발장도 저번에 내가 만든 것으로서 문짝도 얼른 달아야지 하고 있었는데 이미 일 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격리를 시작하자마자 치수를 재어 합판을 주문해 두었다가, 격리해제 전날에 받아서 달았다. 가구에 구멍을 뚫지 않아도 되는 무타공 경첩을 이용하면 간편하긴 한데, 무거운 문짝을 혼자 지탱한 채로 나사를 오차 없이 박아넣으려니 쉽지 않았다. 끝나고 땀에 다 젖은 몸을 샤워하니 잔열이 가시는 느낌이 들고 좋았다.

기억 속에서 제일 오랫동안 집 밖을 안 나간 시간이었다. 마지막 날에는 밖에 나갈 생각에 가슴이 콩닥거려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밖을 나서니 누가 몰상식하게 폐기물 스티커도 붙이지 않고 단지 앞에 내놓은 대형 생활쓰레기마저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