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뉴욕을 찾아갔다.

뉴욕을 찾아갔다. 친구를 보기 위해서. 동네를 살피기 위해서. 구제를 사 입기 위해서. 공연을 보고 영화관에 가기 위해서. 풀밭에 눕기 위해서. 신발이 해체될 때까지 걷기 위해서.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방향을 잡기 위해서. 과거의 나와 자웅을 겨루기 위해서.

가자마자 일상이 회복됐다.

휴가가 3주 짜리, 여행이 2주 짜리 특급 일정이었다. 같이 간 제니와 나는 도착하자마자 트레이더 조와 파머스 마켓에 가서 장을 잔뜩 봐 왔다. 제니는 형형색색 래디쉬에, 나는 고소한 바바가누쉬에 그리움을 느꼈다. 피타 칩과 허머스, 오래 묵힌 단단한 치즈와 서양배 같은 것들. 사온 것들을 에어비앤비 냉장고에 차곡차곡 정리하니 친근하고 묘한 자리잡음이 있었다. 아침에는 번갈아가며 베이글이나 아침 샌드위치를 조달했는데 아메리카노 말고 내려놓은 아이스 커피에 무심한 크림을 타 먹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돌아오는 길에 실실거렸다.

게다가 우정도 회복됐다.

곧 출산을 앞둔 Carol & Jackson과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시 뉴욕으로 복귀한 Morgan, 엘에이에서 필라델피아로 이사 온 Yara, 도예에 열중인 Marcine, 집을 숲속으로 옮긴 Jess, 애묘를 떠나보낸 Jessica. 코로나 때문에 서로도 모일 기회가 없었던 친구들이 이번을 계기로 다 모였다. 그린포인트의 숙소는 독립기념일 불꽃놀이도 보고 동네 블록 파티도 들렀다 오기에 좋았다. 파리 시절에 가까워진 친구들이 많아서 다같이 프렌치 비스트로에서 와인을 곁들인 식사도 하고, 마지막 날에는 어퍼웨스트사이드의 다이너에서 배터지는 1인분을 각자 열심히 먹었다. 한동안 사는 것도 바쁘고 각자 가는 길도 달라서 이대로라면 누구누구만 가깝고 누구누구는 멀어지겠는데 같은 생각이 들곤 했는데, 얼굴을 보니 곧장 10년 전으로 돌아가더라. 다들 나이가 들어서 이제 낯간지러운 우정고백도 잘하고…

곧 있으면 역작을 출간하는 Andrew와는 차이나타운에서 딤섬을 먹으며 우리의 유사한 애착유형과 그로 인한 저주받은 나날들을 공유했다. Charlotte은 프로덕션 사이에 쉬는 기간이 나랑 들어맞아서 웨스트 빌리지에서 낯술 한 잔 할 수 있었다. 오스깔은 한국에서 그렇게 계속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프로스펙트 파크에서 만나니 다른 평행우주에서 발견한 듯한 반가움이. 마침 뉴욕 체류 중인 트위터 친구 한 분도 만나 내가 좋아하는 말레이 식당에서 식사를 했고, 콩지 빌리지에서는 실제로 만나본 적 없는 또 다른 트위터 친구에게 발견되기도 했으며, 샐리와는 매디슨 스퀘어 공원에 자리를 펴고 앉자마자 비가 쏟아져 식사를 리부트해야 했다.

심지어 걷기력이 회복됐다.

하루에 3만 보씩 걷는데 정말 얼마만인가 싶었다. 걷기를 사랑하지만 용산을 떠난 이래 시간도 부족하고 동선도 좋지 않아 삶에서 걷기를 많이 덜어낸 상태였다. 근력운동을 시작하면서 하루에 두세 시간씩 걸으며 에너지를 빼는 대신 배운 운동으로 단시간에 소진하게 된 탓도 있다. 하지만 걷는 것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달콤한 피로의 경지가 있지.

이번에 개인적인 목표에 뉴욕에서 살던 집을 순서대로 방문해 대문 사진을 찍는 게 있었다. 좀 낯간지러운 과제라는 건 안다. 하지만 건물 중 몇 개는 곧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기도 하고, 다음 책을 어떻게 써야 할지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프로젝트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렇게 맨해튼 동서남북과 브루클린 윗동네 아랫동네, 뉴저지 바깥동네 안동네, 퀸즈, 루즈벨트 아일랜드까지 다 돌았더니 굳이 어딜 가봐야지 하는 계획을 따로 세우지 않아도 좋아하는 곳들을 대부분 다시 지나게 되었다. 공공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귀신같이 몸이 기억하더라.

하물며 방향을 회복했다.

성공의 길 = 원하는 걸 아는 것 + 얻는 방법을 아는 것이라고 할 때, 이번 여행에서 왠지 내가 원하는 걸 알아와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을 허리춤에 패니팩처럼 차고 다녔다. 조급한 나는 여행 사흘차, 나흘차가 되면서 ‘어, 왜 인생의 목표 아직 안 떠오르지’ 싶어서 작은 패닉에 빠지기도. 그럴 때에는 너무 비싼 양장 노트와 펜을 사서 뜯지도 않고 가방에 지니고 다니면서 ‘다음 카페에서는 인생의 목표 찾아야지’ 따위의 생각을 머금는다. 웃으시겠지만 이건 통하는 방식이다.

조만간 따로 얘기하고 싶은 영화 한 편과 뮤지컬 한 편을 보고 내가 사랑하는 도시의 오래된 공간들과 그것을 뚝심있게 운영하는 반쯤 미친 사람들과 재회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수천 수만 가지 하찮은 것들의 카락들이 양갈래로 곱게 빗어져 손에 잡히는 것을 보았다. 왼쪽 갈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 오른쪽 갈래는 ‘이야기를 퍼트리는 것’. 이 둘을 해내는 인생을 살고 싶어졌고, 숨이 가빠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