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 보듯 뻔하다.

어제 나에게는 뻔한 일이 일어났다. 너무나 뻔해서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는. 미래와 현재와 과거를 동시에 원형으로 본다는 외계생명체가 보기에 이럴까 싶은 일. 내가 어느 날까지 살다가 결국 죽었다, 같은 그런 평범한 문장처럼. 언제 어디서인지만 모르지만 불 보듯 뻔한 일.

내게는 뻔한 일에 대한 미움이 있었다. 그 미움은 점점 부풀어 찌르면 펑 터져버리기 직전까지 갔다. 심지어 내가 뻔하지 않은 글은 쓸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백번 좌절했다. 좌절한 내 모습, 바닥에 OTL로 무너져 있는 그 모습마져 견딜 수 없이 뻔했다. 나는 뻔한 놈이었다. 내 말, 하나같이 뻔한 말이었다.

하지만 부푼 미움에 언젠가부터 조금씩 바람이 빠지기 시작했다. 뻔한 말을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너에게도 해보고, 나에게도 해보는 연습을 했다. 뻔한 말을 조금씩 견딜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이라 뻔하구나. 인간이라 민망하고, 미안하고, 질투나고, 촌스럽고, 그래도 되는구나. 그러면 나의 목표는 이제 그런 숱한 뻔한 말들을 잠시나마 견딜 수 있게 하는 거, 조금이나마 뻔하지 않게 느껴지도록 돕는 거다. 우리가 하나같이 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것에 OK할 수 있도록.

그래서 어제 내게 일어난 그 뻔한 일은 나를 너무나 기쁘게 했다. 한밤에 대로를 갈 지 자로 걸으며 춤추고 노래했다. 추위에 아이스크림을 먹어서 냉동된 목청으로 외쳤다. 뻔한 일이 드디어 일어났다. 불 보듯 뻔하다. 환호로써 노래로써 이 뻔한 밤을 최대한 기이이이일게 늘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