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인생 자평

감추 해변

2017, 2018, 2019, 2020, 2021에 이어 2022 한 해를 산 나에 대한 평을 쓴다. 나 자신을 위해 쓴 다음 가공을 거쳤다.


총평

2022는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마침내 깨달은 해였다. 나답게 살기 위한 노력을 찬찬히 늘려가고 있다.


7년간 몸담은 텀블벅을 나왔다. 텀블벅은 나에게 직장 이상이었다. 하지만 내가 장기적으로 하고 싶은 나의 일에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들을 생각해 볼 때 새로운 경험을 해 보아야 할 때라는 판단이 섰다. 짧은 휴식을 마치고 새 직장에 합류해 열심히 적응 중이다.


사람

그 어느 때보다 가족들과 가깝고 충만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3월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올해 제대로 은퇴한 아빠와 결혼 2년차에 접어든 동생, 내 집에서 본가까지로 엄격히 한정된 운전을 시작한 나와 내 운전을 미심쩍게 바라보는 엄마… 우리 가족사 3막이 열리는 듯하고 배경음악은 온화하다.

작년과 비슷하게 가까운 친구들에게 심적으로 많이 의지했다. 오스깔이 미국으로 떠나고 작업실은 나와 제니 둘의 몫이 되었는데 우리 둘 다 돈벌이와 성장, 열정과 창작 같은 것들을 다 하려는 궁리를 늘상 하고 있다 보니 작업실이라기보다는 궁리실이 되어가고 있다. 7월에 뉴욕에서 오랜 친구들과, 11월에 서울에서 해리와 오랜만에 재회했다.

하반기에는 코로나로 인한 제한이 풀리면서 각종 행사나 전시 등에서 지인들 만날 일이 많아져서 고무적이었다. 행사 때만 보는 지인도 5년, 10년 되다 보니 애틋함이 있다. 특히 홍민키 작가의 〈쑈쑈쑈〉 등 활동을 통해 전보다 더 가까워진 사람들이 여럿 있어서 좋았다.

연말에 짧은 연애를 했지만 금새 끝나버렸다.


연초에는 좀 골골댔다. 콜록콜록 기침이 계속 나와서 코로나인가 하고 몸보신하려고 삼계탕을 때려먹었는데 더 심해져서 알고 보니 역류성식도였다. 커피 습관을 디카페인 위주로 바꾸었고 저녁 식사 시간을 조정하는 등의 노력으로 나아졌다. 3월에는 코로나에 걸렸다.

웨이트 트레이닝 2년차. 몸무게는 늘었지만 몸의 모양과 성질은 좋아졌다. 최근에는 골반 비대칭을 좀 더 본격적으로 교정하고 있다. 오랜만에 치과 치료를 받고 채소 섭취를 크게 늘렸는데 컨디션 개선에 효과가 좋았다.


마음

심리상담도 2년차. 내가 연애에서, 그리고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그 욕망과 염원들을 좀 더 구체화하는 작업을 이어나갔다. 나는 생각보다 평범한 것을 원하는 사람이었구나 싶어 김이 빠짐과 동시에 찌뿌둥함이 사라지는 기분을 몇 번 느꼈다. 어떤 감정이 몰려올 때 헉 하면서 떨쳐내려고 세 시간씩 앞만 보고 걸어버리는 예전의 방식에서 탈피, 드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살림

평촌 집에 산 지 만으로 삼 년이 됐다. 이제 호스를 이용해 열 개 넘는 화분에 물을 주는 일이나 어글리어스에서 매달 배송되는 채소들을 카레나 샐러드에 때려넣는 일, 외투를 드라이 보내고 이불을 일광 소독하고 여름옷과 겨울옷을 교차해 정리하는 일쯤은 하루에 큰 무리를 주지 않는다. 집에서 손님을 초대하거나 재우는 일도 늘었다.

남현동 작업실을 제니와 함께 여전히 잘 쓰고 있는데, 홍대로 출퇴근하느라 지칠 때 작업실에서 자는 일이 작업실에서 실제로 일을 하는 것보다 많았던 것 같다. 집에 초대하기 뻘쭘한 지인들과 쉽게 모이고 차 한 잔 할 수 있는 점이 좋았고 얼마 전에는 텀블벅 동료들도 초대해서 연말 식사를 했다. 내년에는 작업실을 좀 더 확장하게 될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변화는 연초에 동해에 가족 별장을 마련한 것이다. 내가 양양, 제주, 신당 등에 지인들의 별장이나 모임 공간 등을 레노베이션하면서 그런 공간이 얼마나 큰 자유와 즐거움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실감하고 있었고 공간이나 지역에 대한 안목과 자신감도 커지면서 우리 가족도 그런 곳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가족들의 적극적인 지지로 생각보다 빨리 현실이 되었다. 뭐니뭐니해도 올해 가장 잘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여행

앞서 말한 동해집의 완성으로 인해 가장 많이 방문한 수도권 외 지역은 강원도 동해시가 되겠다. 그 밖에 연초까지 작업을 위해 방문한 제주 한림, 새로 생긴 친구를 만나러 두 번 방문한 부산, 퇴직 후 휴식을 취하러 방문한 광주와 목포 등이 기억에 남는다.

3년만에 돌아간 뉴욕에서는 새로운 트렌드를 쫓는 데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이 내가 좋아하고 지지하는 곳들이 잘 있는지, 내가 살던 집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잘 있더라.


영향

올해 총 36편의 영화를 봤다. 뉴욕에서 본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가 올해 최고의 영화였는데 단순히 영화 내부의 요소들이나 이민자, 아시안, 퀴어 같은 정체성으로서의 공감 때문만이 아니라, 감독 The Daniels와 배우 특히 Michelle Yeoh와 Jonathan Ke Quan 등의 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를 구상하고 합심해서 만들어내는 그 과정이 주는 흥분과 애틋함을 나도 느껴보고 싶다는 자극 때문에 최고였다.

〈헤어질 결심〉은 예술적 충동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자기 인생(특히 연애사)으로 예술을 할 것이 아니라 작업으로 풀어야 건강하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 밖에 특히 기억에 남는 영화로는 〈Fire Island〉, 〈Nope〉, 〈모어〉, 〈너에게 가는 길〉, 〈Knives Out〉, 〈West Side Story〉 정도.

올해 읽은 책이나 글 중에는 〈Minor Feelings〉 (Cathy Parker Hong), 〈This is Water〉 (David Foster Wallace), 〈Why Fish Don’t Exist〉 (Lulu Miller), 〈Product Leadership〉 (Richard Banfield et al), 〈How to Write an Autobiographical Novel〉 (Alexander Chee), 〈The Velvet Rage〉 (Alan Downs), 〈시급하지만 인기는 없는 문제〉 (이동휘, 이여로), 〈퇴근길의 마음〉 (이다혜), 〈글쓰기의 고통과 즐거움〉 (엘레나 페란테, 김지우 역), 〈백광〉 (렌조 미키히코, 양윤옥 역) 등이 특히 영감을 주었다.


작업

2월에 제주 한림, 6월에 강원도 동해, 10월에 신당동 모임공간 OP3, 12월에 〈쑈쑈쑈〉 등 공간 작업을 연이어 했다. 가정집 레노베이션을 넘어 상업공간과 전시 작업으로 경험을 넓혔다.

〈초과〉 10호에 글을 썼고, 번역 감수한 〈패션워크〉가 출간되었고, 〈정규환의 개인사정〉에 짧은 글을 썼다. 웃소시네마시선 홈페이지를 리뉴얼했다. 〈듣똑라〉〈메이커시티세운〉에 나가서 떠들었다. 이런 재미있는 일들은 이제 한곳에 정리가 되었다!

계속 미루고 미뤄서 면목없던 다음 책 원고 작업을 연말에야 드디어 시작했다. 가제는 〈하염없는 레노베이션〉.


인사

2022는 전쟁, 한국과 주변국의 민주주의와 시민자유 퇴보, 경기 악화와 쫌팽이 갑부들의 횡포, 자연 재해와 인적 재해의 경쟁적인 창궐 등으로 인한 고통이 눈 앞에 가득했던 한 해였다. 특히 딱 하루를 꼽자면 10월 29일 이태원에서 발생한 참사는 믿을 수 없이 가깝고 형언할 수 없이 애통하게, 나는 아니었지만 나에게 벌어진 것이나 다름없는 일처럼 할퀴고 갔다. 그나마 이런 아픔을 유머와 음악과 춤과 미쳐버린 것 같음으로 승화시키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에서 위안을 찾아본다. 새해에는 거기에 기여할 방법을 맹렬히 찾으며 함께 살아갈 것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런 아픔을 유머와 음악과 춤과 미쳐버린 것 같음으로 승화시키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에서 위안을 찾아본다. 새해에는 거기에 기여할 방법을 맹렬히 찾으며 함께 살아갈 것이다.
  1. 석영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모습에 힘을 얻습니다. 하고 싶은 일에 응원하겠습니다.

    1. 김괜저

      감사합니다 🫡

  2. 커피팝콘

    어쩌다가 괜저님의 2021 인생 자평을 읽게 된 후 ‘나도 이렇게 한 해를 돌아보는 글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지 벌써 몇개월이 흘렀네요. 며칠 전부터 글을 열심히 다듬어서 발행하고 나니 뿌듯함이 온몸을 휘감습니다. 혹시나 싶어서 다시 찾았는데 2022년도 아주 멋지게 마무리하셨더군요. 어디서 무얼 하실지는 몰라도 2023년에도 행복과 사랑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1. 김괜저

      늦지 않았어요

  3. win

    멀리서 응원하며 사랑을 보낼게요!;)

    1. 김괜저

      잘 받았습니다

  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