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붓기가 가라앉자 부산에 갔다.

2개월 정도 몰두했던 책 번역 일이 거의 마무리되었다. 병원 인테리어 일도 끝났고 〈웬만하면 말로 해〉도 방학 기간이었기 때문에 4월은 회사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원고와 같이 보냈다. 책 쓰던 때 이후로 이렇게 텍스트 속에 있는 경험이 오랜만이었고 즐거웠다. 조만간 책이 나오면 더 자세히 얘기하겠다.

지난 주말에는 금요일까지 3박 4일 부산에 다녀왔다. 한국에 돌아온 뒤 거의 매년 봄에 부산에 가고 있다. 가장 친숙하고 편한 곳은 중구 원도심과 송정 해변 두 곳 정도다. 이번에는 초량동에 묵었는데 원도심은 조금만 걸어도 산 중턱이 되어서 멀리 볼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대학교 문예창작 워크샵에서 초량이라는 지명이 있는 줄 모르고 그냥 이름을 지어내서 단편소설에 썼는데 다른 학생이 검색을 해 보고 초량 이즈 인 부산 롸잇? 이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초량역 앞에 어린이 수십 명이 마약 다시 생각해 보세요 라고 쓴 팻말을 들고 천천히 행진했다. 그래서 약 10분 동안 마약을 다시 생각했다.

백화점 식품관에서 바게트 샌드위치와 두유를 사서 부산시민공원 벤치에 앉아서 먹었다. 전 주에 나는 대단한 식생활 암흑기를 보냈다. 뽑지 않은 사랑니가 크게 부어서 볼이 빵빵해진 상태였고 부드러운 음식, 염증을 자극하지 않는 음식 위주로 먹어야 했다. 팟캐스트에서 재원은 내 옆모습을 보는데 반대쪽 볼이 보일 정도로 부었다고 했지만 사실 그 쪽은 붓지 않은 볼이었다. 그리고 검진과 발치 예약을 하러 치과에 전화했는데 선생님은 사랑니가 부었다는 말만 듣고 대번에 오른쪽 아래가 심상치 않았지 않냐고 말했다. 나를 내 구강으로 기억하는 사람. 사랑니가 부은 와중에 수요일에는 위·대장 수면내시경이 잡혀 있었기 때문에 야예 흰죽을 먹은 뒤 고약한 물약으로 배를 채우며 금식해야 했다. 건강검진이 끝나고 붓기도 조금씩 가라앉으니 가장 먼저 먹고 싶었던 것이 입천장 까지도록 딱딱한 샌드위치였다. 그러나 OPS에서 산 잠봉뵈르의 바게트는 모닝빵처럼 폭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