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방배동 원장님의 원장실에 모여 원장님이 선사한 밥을 나눠 먹는데 오스깔이 그런 얘기를 했다. 내 아이클라우드 계정에 십 년 전에 찍은 사진이 걸려있는데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다고. 표면적으로는 지금보다 십 키로 정도 덜 나가던 때이기는 하지만 그 얘기는 아닌 걸 알았다. 브루클린 인더스트리인지 어반 아웃피터스인지 그런 밀레니얼 브랜드에서 나온 뽀짝한 셔츠를 목젖까지 잠궈 입고 자잘한 카모 무늬가 있는 스냅백을 쓴 채 이스트 리버를 등지고 찍은 그 사진 속 나는 웃고 있다. 나는 그게 내가 웃을 수 있는 최선의, 가장 진실되고 소탈한 웃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웃을 때 없어지는 눈이 없어지고 드러나는 잇몸이 드러나도록 웃었으니까. 하지만 오스깔은 지금 내 웃음이 그 때에 비하면 훨씬 더 편하고 속없는 웃음이라며 차이를 지적했다. 그런가?
뉴욕에서 나는 내가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지척인 동네에서 멋있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에 둘러싸여 지냈다. 나의 초미의 관심사는 내가 그 곳에 어울리는가, 어느 정도 어울린다면 그보다 더 완벽히 어울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였다. 언제나 흥미로운 것들을 찾고 발견의 기쁨을 느끼며 즐겁게 웃었지만 양볼에 도토리를 쑤셔넣은 다람쥐였기 때문에 내려놓고 안도의 미소를 짓는 일은 없었다. 그런 미소는 다 이루고 저 세상 갈 때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지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웃는 상으로 살았지만 내 가장 가까운 친구들은 진짜 웃음이 언제 나올지 기다렸다고 한다. 지금인가.
2024년 고기리 웃음 너무 좋습니다 ✨
더욱 웃음정진 하겠습니다
배부른 집주인 쿼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