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결혼식이라면 딱 한 달 전에 버몬트로 다녀온 것이 마지막이다. 4박 6일의 미국 여행을 이렇게 금방 반복하게 되니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 중후반 부로 넘어갈 때의 피곤함과 짜릿함이 뒤섞인 기분이 들었다. 동부 숲속 깊숙한 곳에서 별을 보며 했던 9월 결혼식과 대비되는 캘리포니아 바닷가 해변에서의 화창한 결혼식이었고, 무엇보다 나와 20년을 알고 지낸 가장 오랜 친구가 주인공인 점이 특별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명확하게 주어진 축사라는 임무가 있었다. 미리 써놓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결혼식 전까지 무슨 얘기를 할지 틈틈이 생각을 했기 때문에 잡생각이 들지 않아서 좋았다. 이렇게 가야 할 행사가 있고 거기서 할 일까지 잘 정해져 있으면, 여행을 특별히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지 않아도 된다. 카멜에서 숙소 앞 같은 식당 밥을 두 번 먹었고 밤에 괜히 나돌아다니지도 않았다. 구제 자켓을 두 벌 사서 페브리즈에 적시다시피 해서 밤바람에 말려보고 둘 중 나은 것을 칵테일에 입고 갔다. 결혼식은 완벽한 날씨에 힘입어 순조로웠고 사람들은 정겨웠고 비눗방울이 날렸다.
샌프란시스코에 마지막에 간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9년… 이렇게 간 곳의 지난 번을 떠올리고 세월에 놀라는 뻔한 짓을 반복한다. 도시가 많이 상했다고는 하나 상쾌한 언덕배기 공원과 해무, 유서 깊은 카운터컬쳐의 향기 같은 본질은 여전하다. 옛날만큼 일정이나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아 그리 넓은 반경을 다니지는 못한 것이 아쉬워서 마지막 날에는 공항에서 더 가까운 남샌프란시스코의 약간은 삭막한 평균의 풍경을 보며 다녔다. 휑한 아침 타겟과 삼엄한 새벽 월그린에서 생필품을 구경하는 것. 하드웨어 스토어와 가든 센터를 마치 용달을 부르고 룸메이트에게 전화해 이 대형 화분을 집에 들일 수 있는 양 둘러보는 것. 커피숍에서 눈길이 오갔던 사람이 다음날엔 없을 나를 떠올리진 않을까 상상하는 것. 그런 잔재미가 있는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