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는 밀물처럼 차오르는 어둠 속에서 나의 하찮음과 우리의 위대함을 동시에 감각한 해였다. 2024의 결과로 나는 습관적인 초조함과 정당한 두려움을 조금 덜 헷갈리게 되었다.
말
작년 3월에 시작한 팟캐스트 〈웬만하면 말로 해〉가 어느덧 64회를 넘겼다. 올 4월에는 〈본·산·간〉, 〈호영의 화〉, 〈최재원의 식〉, 〈김괜저의 주〉와 같이 코너를 만들고, 격주 + 비정기 보너스화로 호흡을 조절했다. 이 장기 프로젝트의 내 마음 속 위치도 더 공고해졌다. 단지 워커홀릭 프로듀서로서만이 아니라 우정 인간의 자세로 즐거움을 챙기며 임하고 있다. 우리 셋 다 책을 낸 해이기도 하니, ‘글이 안 써져서 일단 말로 해본다’던 초심이 완전히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니었던 걸로.
애플 팟캐스트, 유튜브, 스포티파이에 진출했다. 웬말의 출발을 함께해 준 스테디오는 오늘 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사실 스테디오는 텀블벅이 숱한 고비 중 하나를 넘기던 2010년 중반에 처음 기획되었고 출시 직전까지 갔던 서비스였다. 그 당시 때맞춰 나왔더라면 더 잘 됐을지도 모른다. ‘모른다’에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수고한 사람들 얼굴을 떠올리며 애착을 담아 안녕.
글
첫 번역서 〈포에버리즘〉(그래프턴 태너, 워크룸프레스)이 6월에 출간되었다. 연계 일민미술관 전시가 내려가기 전에 책이 나올 수 있도록 바쁘게 작업했다. 내가 흥미를 느끼고 잘 붙잡고 옮길 수 있는, 그리고 이어지는 담론에도 참여할 수 있는 적절한 책을 만났다고 생각하고 나를 떠올려준 이동휘 편집자에게 감사하다. 영원주의(foreverism)라는 강렬하고 감성적인 단어로 넓은 영역의 사회문화적 문제들을 이리저리 건져올려 같이 생각해 볼 수 있어 재미있었고, 일민 미술관에서 진행된 역자 후기 행사도 잘 마쳤다.
직장
카카오톡 채널 팀에서 기획자로 일한 지 2년차가 되면서 큰 과제를 이끌어 완수하기도 하고, 도구 다루는 기술을 전파하기도 하고, 조직의 빈틈을 이리저리 메꾸기도 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다. 프로덕트라는 영역은 워낙 산업별, 조직별로 달라 상통하는 전문성이라는 것을 정의하기 어렵지만, 이제야 막 어떤 직업인의 형태 비슷한 것을 갖춘 것일까 싶기도 하다.
작업실
작년 초 남영동에 얻은 작업실을 위시한 재미-공간 〈오드컨선〉이 벌써 만 2년이 가까워간다. (세입자에게 만 2년이 가까워졌다는 사실은 어떤 전화가 걸려옴으로서 전달되곤 한다.) 올해는 운영자 두 명 외에 세 명의 작업실 메이트가 함께 작업실을 쓰면서 썰렁한 느낌이 많이 없어졌다. 재택근무가 없어진 나는 주로 주말에만 갈 수 있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간간히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일을 하는 경험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2월에는 〈진격하는 저급들〉(리타)의 북토크가 오드컨선에서 열렸다. 영이 님의 사회로 진행되었는데 오신 분들의 몰입이 대단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5월에는 임아진 작가를 비롯한 퀴어 아티스트 6인의 파자마 파티 퍼포먼스 쇼케이스 〈가만히 웅크리고 있습니다〉를 주관했다. 춤을 추고, 영상을 보고, 동화를 구연하고, BDSM을 시연하는 등 공간에 담을 수 있는 최대치의 에너지를 담아본 밤이었다.
7월에 오드컨선은 번역가 4인과 그의 친구들이 참여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재건을 위한 기부금을 마련하는 〈번역가와 친구들 벼룩〉의 배경이 되었다. 가자에서의 상황이 급속히 악화되고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지 막연하던 시기에 손에 잡히는 연대의 시간을 뚝딱 만들어낸 번역가들의 기지에 감탄하며 열심히 쿠키 판매를 도왔다.
프로젝트
겨울과 봄에 걸쳐 닥터탁 성형외과 브랜딩과 인테리어 리모델링을 맡아 했다. 이전에 다른 성격의 프로젝트를 함께한 지인 덕분에 연결된 기회였지만, 순수 상업 프로젝트가 처음인 내게 강남역 노른자 땅에 다른 종목도 아닌 성형외과의 인테리어는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지향점에 대한 공감대와 충분히 시간을 들인 논의 덕분에 무사히 개원했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작년에 호영의 집을 꾸민 데에 이어 올 봄에는 그의 온라인 홈을 지었다. 오혜진 디자이너가 만든 그의 명함의 시각언어를 따와서 온라인에서 구현하는, 그의 업인 번역과 상통하는 접근이었다.
가을~겨울에는 이경민 디자이너의 디자인 스튜디오 복도의 새 을지로 스튜디오 리모델링을 작업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고 많은 세상사를 간접적으로 함께한 사이지만 주기적으로 만나고 같은 일을 끝내본 건 처음이라 각별했다. 우선은 스튜디오로 완성했지만 추후 서점과 전시 공간을 겸할 계획이다.
사람
웬말 삼인방, 작업실 메이트, 원장실 사람들 등 꾸준히 얼굴 볼 일 있는 가까운 사람들 덕분에 공허하지 않은 한 해를 보냈다. 몇 달에 한 번 겨우 밥 먹는 H, J, J, J, J, Y 같은 친구들에게 내가 그들을 얼마나 좋아하는 건지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J만 저렇게 많은데 전달될 리가…)
미국 서부와 동부에서 오랜만에 재회한 많은 친구들. C, M, J, Y, J, K, S, D, Y, E, 그리고 어느덧 나를 엉클이라 부르는 그들의 2세까지… 나는 미국에 두고 온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살 줄 알았는데 부럽다기보다는 자랑스럽다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연애는 없었던 한 해였지만 꽤 즐거운 데이트는 여러 번 했다.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게 작년에 비하면 편해졌다.
12월 유독 추운 날에 외삼촌이 돌아가셨다. 그는 내게 상징적인 사람이었고 그를 생각하면 나는 나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 가족은 슬픔을 잘 겪었다.
생활
운동을 시작한 지 4년차. 처음으로 간식과 식사 시간을 통제하면서 작년에 늘어난 체중을 5kg 감량했다. 요즘은 예전의 내가 듣는다면 믿기 힘들겠지만 다리를 조금씩 찢어보고 있다. 심리 상담도 꾸준히 계속 받고 있다. 이렇게 많은 얘기를 했는데 아직도 매번 시간이 모자랄 만큼의 얘기가 있다니…
치과, 비뇨기과, 정형외과 치료를 받을 일이 있었고, 4월에는 건강 검진을 했다. 바쁘다 보면 시기를 놓치는 일이 많아 내년에는 이런 저런 병원 방문을 위한 시간을 따로 안배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
동해집에는 1월, 2월, 3월, 6월, 8월 이렇게 총 다섯 번 갔다.
2월과 11월에 타이베이에 갔다. 2월에는 엄마와 함께한 잊지 못할 신년 여행. 11월에는 뉴욕, 서울, 대만 각지의 친구들이 한 주말에 모이는 회담.
4월에는 부산, 10월에는 계룡에 놀러 갔다 왔다. 계룡에서는 오랜 친구 Y의 본업을 구경했다.
6월의 비엔나는 아름다웠다. 하루의 대부분을 음악과 미술로 채워놓고 쉬는 호사스런 여행일 수 있었는데 지갑 분실 사건으로 권장량의 서스펜스를 채웠다.
9월에는 뉴욕, 버몬트에 Y의 결혼식을 위해 다녀왔다. 쏟아지는 별. 튀어나온 아기들. 빗속의 웨딩 댄스. 프렌치 토스트… 아름답게 나이 드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일지 (절대 알 수 없는 것) 궁금해했다. 아참 그리고 첫날 묵은 저지 시티에서는 정말 예상 밖의 옛 인연과 조우한 잊지 못할 우연도.
10월에는 샌프란시스코와 몬터레이-카멜에 S의 결혼식을 위해 다녀왔다. 철썩이는 바다. 흩어지는 비눗방울. 석양이 지는 언덕. 너무 훌륭하게 해낸 축사.
문화
책 22권을 읽었다. 소설은 15권, 시 1권, 에세이 3권, 비평 3권이었다. 〈전부 취소〉, 〈백합의 지옥〉, 〈삼체〉3부작, 〈Rejection〉 등.
영화 27편을 보았다. 〈낸 골딩: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Past Lives〉 등.
전시 21편을 보았다. 전시 왜 이렇게 많이 봤지? 〈사물은 어떤 꿈을 꾸는가〉,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등.
크고 작은 행사나 축제 20개에 갔다. 〈정동진 독립영화제〉, 〈아시아 팝 페스티벌〉 등.
공연 또는 연극 7편을 보았다. 〈한 방울의 내가〉, 〈정훈희 x 송창식 with 함춘호〉 등.
TV 시리즈 6편을 보았다. 〈The English Teacher〉, 〈Wandavision〉 등.
올해는 너무 많은 일을 했다. 후회까지는 아니지만 이럴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연말에 주변을 조금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길까 싶을 시점에 국가가 큰 소리를 내면서 주저앉았다. 평소에 충분히 못 보고 살아서 아쉬웠던 사람들을 차도에서 만나고 같이 울분을 토했다. 마음도 부족하고 말도 부족하고 행동도 부족하다. 나는 완벽하지 못하고 외로움이 팔자인 것처럼 느껴지는 나 자신을 몰아세우기보다는 따뜻한 밥을 먹이고 외투를 입혀 내보내고 싶다.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에.
만나서 반가운 한 해였습니다~
맞습니다!
괜저의 인생 자평을 매년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올해도 멋지게 살았군요. 💙
내년도 무사히!
멀리서 가까이서 늘 응원합니다.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