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티칸으로 갔다.

서울-로마 티웨이 직항이 있더라. 저렴한 대신, 좌석 앞에 스크린이 있는데도 켜지지 않았다. 줄 달린 리모콘을 빼면 만들어지는 틈새에 거치용 집게를 용케 끼워넣어 아이패드를 눈높이에 올려 달았다. 주변의 부러워하는 눈빛이 느껴졌다. 공항에서 다운로드 받아둔 이탈리아 배경 영화 몇 개 중 〈누오보 올림포(Nuovo Olimpo)〉를 먼저 틀었는데 게이 에로스에 집중되는 시선이 부담이 되어 금방 끄고 말았다. 좀 더 비행이 무르익으면 보려고 했던 〈두 교황〉을 틀었다. 〈콘클라베〉는 그 다음 순서였다.

신비한 여행이다. 엄마와 아빠는 이미 로마에서 한 주를 보냈다. 나는 작년 비엔나에 이은 그들의 두 번째 해외 한달살이에 중간 점검자 역할을 또 한 번 자처했다. 이번에는 숙소 고르기를 도울 때부터 내가 잘 수 있는 작은 방이 딸린 데로 정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회사 일이 바빠지고 내 역할이 늘어나서, 휴가 쓰는 데 주저함이 없는 편인 나도 이거 취소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제법 들 정도가 되었다. 로마에 도착한 엄마 아빠는 정 바쁘면 오지 않아도 된다고, 괜찮다고 말은 하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웃고 있는 모닝 커플 셀카를 함께 첨부했다. 그리고 교황 프란치스코 선종 뉴스가 떴다.

〈두 교황〉을 거의 다 보아갈 때 쯤에야 서서히 이 여행의 실감이 들었다. 세상의 중심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엄연히 따로 있기도 한데 로마는 그 중 하나. 나는 특히 열한 살 겨울, 첫영성체 준비로 새벽 미사를 갔다가 하필 학교에서 나를 눈물나게 하던 소년이 졸린 티도 없이 복사를 선 모습을 보고 나서 신비의 존재를 받아들였다. 물론 성인이 된 뒤부터는 더 이상 조직화된 종교의 일부로 나를 인식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평생 젖은 채 살아온 카톨릭 문화의 본가에 가보는 여정에 아무 의미도 두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엄마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성당으로부터 멀어졌다가, 얼마 전 외삼촌 장례 날에 신부님과 수녀님이 오셔서 손을 잡아 주고 나서부터 다시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마음을 너무나 알겠으면서도 전혀 모르겠다고도 하겠다.

〈두 교황〉은 무척 좋았다. 베네딕토 16세로 분한 앤서니 홉킨스가 너무나 훌륭했고, 단순히 과거 대 미래, 보수 대 진보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현대 카톨릭의 육중한 존재와 그 선봉에 선 한 명의 인간에 대한 성찰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그에 비하면 〈콘클라베〉는 일단 철저한 오락물이어서 보는 재미가 없진 않았지만 추기경들이 다들 너무 팔팔하고 화면이 너무 칼로 벤 듯 트렌디해 무게감이 부족했고 존 리스코나 이사벨라 로셀리니 같은 배우의 활용도 아쉬웠다. 〈두 교황〉이 카톨릭에 관한 영화라면, 〈콘클라베〉는 카톨릭을 활용한 영화랄까. 그렇다면 카톨릭에 관한 영화가 더 좋았던 나는 카톨릭으로부터 충분히 독립을 못 해낸 사람이 되는 것일까?

철도 사고로 공항에서 로마 시내 진입이 많이 지연되어 엄마 아빠의 걱정을 샀다. 결국 택시를 타고 숙소로 들어가면서 근처에 있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을 지나치는데 밤 늦은 시간에도 성당 앞에 조의를 표하러 온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이 아니라 로마의 이 성당으로 묻힐 곳을 정했다고 했다. 며칠 뒤 장례 미사가 열린 곳도 이곳이었는데, 바티칸에는 해외에서 온 성직자와 관광객들이 많았다면 확실히 여기로 조문 오는 사람들은 더 평범한 지역 사람들인 듯한 인상을 받았다. 도시의 모든 깃대에 조기가 달렸고, 일간지 〈일 메사제로〉 일면은 「Il Mondo a Roma(세계가 로마에)」였다. 슬픔의 한복판에서 짐짓 기뻤다. 평시에 혼자 왔더라도 카톨릭은 무엇인가, 인간 교황은 누구인가 하는 (별로 깊지는 않은) 사유에 잠긴 채 다녔을 텐데, 온 세계가 같은 주제에 몰두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입관 조문 기간인 사흘간 바티칸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꽤 시간이 드는 일이었다. 우리는 바티칸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까지만을 목표로 삼았지만 성 베드로 대성전에 들어가 조문을 하고 나오려는 사람들은 한나절을 꼬박 거기에서 보낼 터였다. 간밤에 내가 로마에 있다는 것을 본 친구로부터 DM이 왔다. 성상을 하나 사다 줄 수 있겠냐는 부탁이었다. 그가 누구를 기억하며 그토록 애틋하게 기도하는지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던 나로서는 당연한 미션이었다. 바티칸에 있는 성물 가게에서 마침 딱 하나 남은 그 성인의 성상을 골라 저걸로 달라고 하면서, 마치 성배를 고르는 인디아나 존스가 된 기분으로 친구를 위해 이 미션을 이해하고 수행하는 기쁨을 느꼈다. 나에게 종교는 수십 수백 갈래로 난 영혼의 길 중 하나라기보다는, 친구와 가족과 세계를 이해하고 더 그들 가까이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언어라는 생각과 함께.

성 베드로 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