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인생 자평

성산동, 사진 @6699press

2025는 눈앞을 가린 뜬구름을 헤치며, 땀과 피로 미끄러운 바닥에서 중심을 잡으려 애쓴 해였다. 2025의 결과로 나는 잠시 조용해졌다.


살림

전년 연말이 비상 상황이었다 보니 몸도 마음도 밖에 나가 있었고, 봄이 되고 나서부터야 생활을 챙길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바쁘게 살았다는 말에 별반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이제 안 하고 싶지만… 바쁘게 살았다. 평촌집에 산 지도 벌써 오 년이 되었다. 올해 내내 청소를 하는 것 외에는 어떻게 더 고치고 꾸미고 할 생각이 들지 않다가 연말이 되어서야 늦바람이 불어서 대청소랍시고 집을 뒤집었는데, 하필이면 회사 큰 일도 그 때 끝나며 약해진 면역에 목감기가 치고 들어왔다.


재미있는 일

지난 몇 년 간 기회 닿을 때마다 즐겨 하던 공간 꾸미는 일은 조금 멈춰두고 공간에 대한 글을 쓰는 일로 넘어가려 했는데, 아직 갈 길이 멀다. 한편, 예상치 못하게 연극, 비평, 커머스 개발 등 해보지 않은 일을 시도할 기회가 많이 주어졌다.


카카오

카카오로 일터를 옮긴 지 삼 년이 되었다. 올해는 카카오비즈니스 파트너센터 앱 리브랜딩 개편에 팀 전체가 매진했기 때문에, 직장에서 한 일을 설명하기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물론 결과는 간단하지만 과정은 복잡했다. 열심히 했다.


오드컨선

해 잘 드는 남영동 작업실 오드컨선도 삼 년이 되어간다. 작업실을 거쳐간 멤버가 한 명 늘었고 현재는 공석이 하나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oddconcerns로 메시지 주시길 바란다.


웬만하면 말로 해

마찬가지로 삼 년차인 팟캐스트 〈웬만하면 말로 해〉는 4월 EP72을 기해 방학에 돌입했다. 하반기에 세 편 정도 비정기화를 내놓기는 했지만 아직 개학은 못하고 있다. 내년에는 떨치고 일어나 다시 재개할 수 있기를.


사람

8월에 Chogars 가족이 서울에 놀러와서 같이 지냈던 것, 9월 서울아트위크 주간에 헨리가 와 있었던 것이 특히 행복했다. 독립출판의 꿈을 나눈 동지 H씨의 결혼식도 기억에 남는다. 여러 계기를 통해 친숙하지만 친구인가 싶은 거리를 유지하던 사람들 여럿과 친구가 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신변

같은 강도와 빈도로 운동을 계속 해나가고 있다. 올해 나에게 칭찬할 일은 여행지인 도쿄에서 시간을 내어 주 3회 체육관에 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년에는 새로운 변화가 필요할 듯하다. 나는 드디어 유산소를 생활에 들일 수 있을 것인가? 고생 끝에 사랑니를 하나 더 뺐고 알러지성 비염과 함께 살아갈 운명을 받아들기로 했다.


여행

  • 동해집에는 1월, 4월, 7월, 8월에 갔다. 특히 8월에는 친구들과 함께 가서 바다 수영하고 제대로 놀았다.
  • 2월에는 부산에 갔다.
  • 3월에는 제천에 갔다.
  • 4월에는 로마와 나폴리에 갔다. 교황 공백 주간의 바티칸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체감하고.
  • 5월에는 대구에 갔다.
  • 8월에는 전주와 군산에 갔다.
  • 9월에는 부산에 갔다.
  • 10월에는 도쿄에 두 번 연속 갔고, 시즈오카도 갔다.
  • 11월에는 부산에 갔다. 내년에 명예 부산인 자격증 발급받을 예정.

문화

  • 〈Writing Down the Bones〉, 〈소문〉 외 21권의 책을 읽었다.
  • 〈파문〉, 〈Queer〉 외 28편의 영화를 보았다.
  • 〈Prism of the Real〉, 〈UnHouse〉 외 23편의 전시를 보았다.
  • 〈이태원 트랜스젠더 클럽 2F〉, 〈KOOZA〉 외 12편의 공연 또는 연극을 보았다.
  • 〈군산북페어〉 외 18곳의 행사나 축제에 갔다.
  • 〈Search Party〉 외 7편의 TV 시리즈를 보았다.

일 년 단위로 삶을 돌아보며 이런 글을 쓰지만, 실은 매일 돌아보고 있다. 하루를, 한 달을, 십 년을… 과거의 나를 방문하는 일에 더 이상 성장을 위함이라는 명목을 붙이고 싶지 않다. 그저 과거의 나는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일 뿐이니까. 예전보다 더 기록이 습관화되어서 한 해에 무엇을 보고 어디를 갔는지 등을 정리하는 건 이제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재미있게도 연초에는 미래를 고민하는 사변적 전시에 코멘트를 쓸 일이 있었고 연말에는 회사에서 AI 등을 운운하며 비즈니스 트렌드를 발표할 일이 있었다. 이미 대세로 여겨져 돌고 있는 얘기들을 모아서 정리하는 것은 그냥 하면 되는 일로 생각된다. 그런 얘기는 어차피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불안과 자본의 욕망이 어떤 미래를 불러오고 있는지 해설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다만 내가 가만히 있으면 내 일이 아닌 것으로 되는 남들의 삶과 죽음, 불행과 길 잃음, 병과 고통에 대해서 내 자세를 정리하는 것은 해가 갈수록 어렵다. 나만 잊어버리면 없던 일이 될 것 같은 가까웠던 사람의 일부터, 직시하기 힘든 먼 나라의 전쟁과 재난까지… 세상은 결국 살면 살수록 알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리는 것일까? 1월 1일 서울의 아침은 매우 춥고 청명한데, 새해는 아직 뿌연 안개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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