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에서의 작년은 2월 초가 되어서야 끝나는 경향이 있으므로, 2월 둘째주에 시작된 올 설 연휴는 한 해의 끝과 시작을 체감하며 보내기에 적절한 시기라 하겠다. 금토일월화수로 6일간 길게 주어진 연휴를 삼등분해 제작의 시간, 가족의 시간, 몰입의 시간으로 보내고 있다. 제작의 시간에는 작업실에서 두 편의 가열찬 프로덕션이 있었다. 가족의 시간에는 떡국과 아롱사태찜과 두바이 쫀득 쿠키가 있었다. 몰입의 시간은 〈석세션〉과 오디오북이 일단 채우고 있는데 또 무엇이 들어올지 모르겠다.
신정과 구정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추세인데, 구정은 설날로 문제 없이 대체되지만 신정은 양력설이나 새해, 1월 1일 같은 단어들 전부 어딘가 고유명사같지 않고 ‘신정’의 그 어떤 말맛이 살지 않는다고 느낀다. 물론 이제 쓰지 않게 된 말이라 일방적으로 향수를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여튼 신정에도 네팔 음식점에서 커리와 짜이를 먹었는데 설날에도 똑같은 점심을 먹었다. 이 집은 붉은 카레는 달고 초록색 카레는 단맛이 하나도 없어서 혼자라도 반드시 섞어 먹어야 한다.
실은 점심에 중국 음식을 먹으려고 대림에 훈툰탕이 맛있다는 집을 찾아갔는데 막상 가니 분위기가 낯설어 서성이다 포기했지 뭔가. 안산, 수원, 평택에서 갔던 여느 중국 음식점들과 달리 연휴의 대림중앙시장은 북새통이라 씩씩하게 들어가 빨리빨리 주문할 재간이 없으면 주눅이 든다. 북적이는 시장 풍경만 열심히 구경하다 발길을 옮겼다.
명절의 오후가 찾아오면 명절의 중심을 빗겨난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 관심이 간다. 뉴욕 유학생들이 땡스기빙이나 크리스마스에 딤섬이나 피에로기를 찾아 먹었던 것도, 춘절 홍콩의 썰렁한 번화가에 동남아시아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노는 것도, 어제 선글라스 사러 들린 화서 스타필드 앞에 유독 한껏 꾸민 다인종 청년들이 많았던 것도.



내 세상을 넓히려니 내 세상이 좁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듀오링고에 재미를 붙였는데 내가 이거 하는 모습이 자타공인 가관이다.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4개 코스를 병렬로 돌리고 있다. 현 시점 중국어 스코어 (레벨과 비슷) 6점. 일본어 10점. 스페인어 5점이다. 마지막으로 추가된 프랑스어는 나름 부전공자인데 듀오링고로 배운다는 게 자존심이 상했지만 기본기라도 유지하려면 그럴 형편이 아님을 시인하고 60점에서 가 보고 있다. 언어를 이렇게 중구남방으로 배워서야 ‘몰입의 시간’이 전혀 아니라는 건 알지만 내게는 맞는 방식이다.

신옌콰일러-아케마시테오메데토-펠리즈안뇨누에보-본아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