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죽는 삶4 개월 전 나는 바로 여긴지도 모른다. ⌜내가 대장도에서 올라가봤던 작은 봉우리 얘기 해줄까? 봉우리. 새만금방조제에서 봤을 땐 자그마한 동산일 뿐이었지만, 그 섬들 중에선 그보다 높은 봉우리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어.⌟
안 죽는 삶6 개월 전 나는 평균연령이다. ⌜온라인은 대체로 의도된 언어적 메시지 전달 위주로 이루어지며 누군가를 대면해서 만날 때처럼 무언의 불편함과 어색함을 견딜 것을 강요하지 않고, 그렇기에 거기서 얻은 자신감은 사이버머니에 그치는 일이 많다.⌟
안 죽는 삶6 개월 전 나는 통화량이 늘었다. ⌜전화를 하면서 걷는 일이 많아졌다. 점점 없어져가던 통화할 일이 이렇게 2020년에 다시 많아질 줄이야. 월 통화사용량이 0분 남았다는 문자를 꼬박꼬박 받는다.⌟
안 죽는 삶10 개월 전 나는 재택근무 중이다. ⌜일단 잠과 끼니 시간은 절대 고정이다. 아침에는 작은방 거울 앞에서 맨손운동을 한다. 일할 때만 조명을 차갑고 밝게 하고, 창문을 열어 온도를 20~22도 정도로 내린다. 밥이나 커피 둘 중 하나는 밖으로 사러 나간다.⌟
안 죽는 삶12 개월 전 나는 홍콩에서 춘절을 보냈다. ⌜모든 것이 잠시 멈춘 춘절은 잠깐 가서 친구 집 샤워기 걸이를 고쳐주고 오기에 좋은 타이밍이었다. 신종 코로나로 정말 도시 전체에 마스크가 아예 동나서 겨우 구한 유아용 마스크를 쓰고 종일 걸었다.⌟
안 죽는 삶1 년 전 나는 짐 싼다. ⌜짐 싸는 주말이다. 성탄절 아침에 포장이사 나갈 수 있을 정도로만 하면 되고 작은 원룸 오피스텔이라 그렇게 할 일이 많지는 않지만 이 년 가까이 살면서 연애도 하고 친구도 재우고 취해도 보고 피도 나 보고 울어도 보고 했던 그 감정적인 짐을 잘 싸야 한다.⌟
안 죽는 삶1 년 전 나는 〈결혼 이야기〉가 다 좋은데 하나가 거슬렸다. ⌜최근 한 달간 거의 매일 듣고 또 들은 곡인 〈Being Alive〉를 아담 드라이버가 부르는 장면이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우산도 없이 빗길을 뚫고 아트하우스모모로 달려갔다.⌟
안 죽는 삶1 년 전 나는 과학에 기댄다. ⌜과학은 드넓지만 길을 잃을 길이 없고 오직 공동 운명인 방식으로만 외롭게 하며 산다는 것은 뭔가를 짊어지거나 뭔가에 의해 내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음인 것임을 알려준다. 어쩌면 과학이란 문제의 정답이 ‘넌 괜찮다’가 아닌가 한다.⌟
안 죽는 삶1 년 전 나는 더 잘 우울해 나간다. ⌜요즘 곰곰히 내 내면의 감정들을 관찰하면서 내가 우울하지 않았던 것은 우울한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걸 내내 쫓아내고, 덮어씌우고, 없었던 체해왔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