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짐 싼다.

⌜짐 싸는 주말이다. 성탄절 아침에 포장이사 나갈 수 있을 정도로만 하면 되고 작은 원룸 오피스텔이라 그렇게 할 일이 많지는 않지만 이 년 가까이 살면서 연애도 하고 친구도 재우고 취해도 보고 피도 나 보고 울어도 보고 했던 그 감정적인 짐을 잘 싸야 한다.⌟

나는 과학에 기댄다.

⌜과학은 드넓지만 길을 잃을 길이 없고 오직 공동 운명인 방식으로만 외롭게 하며 산다는 것은 뭔가를 짊어지거나 뭔가에 의해 내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음인 것임을 알려준다. 어쩌면 과학이란 문제의 정답이 ‘넌 괜찮다’가 아닌가 한다.⌟

나는 가졌던 아이폰들 줄세운다.

⌜표준 화각이나 저조도 성능을 보충할 필요가 있어서 나오자마자 샀다. 그래 봤자 식사만큼 자주 찍어 올리는 인스타그램이나 더 잘하게 되겠지. 내가 아이폰을 사서 써 온 건지 아이폰이 나를 숙주로 부려 온 건지 구분하지 말기로 하자.⌟

나는 부산에 여덟 시간 있다 왔다.

⌜부산역에 도착한 열 시부터 다시 부산역을 출발한 다섯 시까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움직였다. 호텔 로비에 딸린 커피숍에서 마시면서 글 좀 썼다. 새로 생겼다는 민물장어 덮밥집에서 시키는 대로 밥을 사등분해서 먹었다. 교보문고에서 산문집 하나 사서 광안리 해변에서 반, 영도에 전망 좋은 카페에서 반 읽었다. 부산 아트 북 페어에 가서 구경하고 사람들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