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인생 자평

⌜작년도 재작년도 하루하루를 고민하고 외로워하며 보낸 것 같은데, 한 해를 통째로 보면 늘 고민한 것보다는 이룬 것들이, 외로워한 시간보다는 외롭지 않았던 (외롭다의 반대말이 뭐지?) 날이 더 기억에 남는다.⌟

나는 그간 눈떨렸다.

⌜커피를 안 마신 건 카페인이 지난 한 달 가량 지속된 왼쪽 눈밑 떨림의 원인으로 지목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크게 기지개를 켜거나 하품을 하는 것처럼 신경에 전기가 쫙 흐르는 그런 때에 떨림이 심했다.⌟

나는 그만 흐리련다.

⌜비도 오고 하니 요즘 하루 중 몇 시 쯤인지 가늠이 안 된다. 아침에 환하게 해가 뜨면 팔굽혀펴기라도 해야 할 것 같고 오후에 햇빛이 노래지면 오늘 눈 앞의 일만 하느라 계획과 회고에 시간을 쓰지 못하진 않았는지 견과류 한 봉지 먹으며 뉘우치게 되는데, 계속 흐리니까 그냥 저냥으로 하루를 보내기 쉽다.⌟

나는 전등 하나를 없애고 두 개를 달았다.

⌜어제 점심 약속이 있어 집을 나서다가 부엌 옆 작은 식탁에 올려놓았던 유리 전등갓을 떨어트렸다. 경쾌한 와장창!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났다. 미세한 조각들이 꽤 멀리까지 도달한 것을 보고 긴장했다. 수건을 깔고 무릎을 꿇고 비로 꼼꼼하게 쓸어담았다. 그 유리 전등갓은 저번 주말에 빼 둔 것이었다. 벽 한켠에 무심하게 달려 있는 스콘스 형태의 전등인데 큰 사기 대접을 반으로 […]⌟

2018 인생 자평

⌜작년에 이어 같은 방법으로 한 해에 대한 평을 쓴다. 나 스스로를 위한 가감없는 〈2018 인생 자평〉을 먼저 길게 쓰고 나서, 검열과 가공을 거쳤다. 0. 총평 2018년은 내가 지난 10여 년 간 「어쩌면 나와는 관련없는 일일지 모른다」고 생각해 왔던 일반적인 인생의 측면들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나의 상을 발견하고 자세를 고쳐 나갔던 한 해였다. 나는 […]⌟

나는 돈 돈 한다.

⌜어쩐지 주변에 돈 얘기 잘 안 하는 사람으로 인식돼 왔던 것 같다. 공부도 돈 버는 일과는 별 상관 없는 과목들로만 하기도 했고, 딱히 어떤 길로 가야 돈을 더 버는지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살아온 느낌이다. 실제 내 마음 속에도 돈이 차지하는 지분이 별로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마주친 동창이 만나자마자 재테크 얘기를 하는 걸 […]⌟

나는 서울퀴어문화축제가 끝나고 앓아누웠다.

⌜우리는 M을 찾고 있었다. 두 번째 트럭 뒤에 있다고 해서 열심히 걸어 여섯 번째 트럭부터 따라잡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호리호리한 실루엣의 M이 세상에서 제일 튀는 까만 시스루 드레스를 입었다고 해서 바로 찾을 줄 알았건만. 우리는 어쨌든 노래와 구호에 맞춰 어깨를 씰룩이며 걸었다. 행진이 종로에서 안국 방향으로 방향을 틀 때쯤, 갑자기 머리가 띵해졌다. 「너 얼굴 안 […]⌟

나는 또 따로 있는 것 같다.

⌜중요한 소식부터! 2017 인생 자평의 가장 직접적인 결론은 하루 2시간 걸리는 통근을 줄이자였는데, 그것을 줄일 수 있는 결정을 즉각 내렸다. 다음달에 이사간다. 집 계약을 한 당일 심지어 머리를 자르고 안경을 바꿨다. 이렇게 평소에는 생각만 하던 일들을 두세 개씩 해치우는 그런 날들이 또 따로 있는 것 같다. 머리는 가르마를 탈 수 있는 선에서 가장 짧게 치고 […]⌟

2017 인생 자평

⌜12월 32일을 맞아 지난 한 해를 돌아보겠다. 블로깅 초창기에 했던 것처럼 몇 가지 주제를 정해 한 해를 주제별로 돌아보는 작업인데, 달라진 점이 있다면 블로그에 공개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 스스로를 위한 가감없는 〈2017 인생 자평〉을 먼저 길게 쓰고 나서, 축약과 검열 그리고 번역을 통해 아래와 같은 형태로 가공하는 과정을 거쳤다. 내가 사적으로 나 […]⌟

나는 <오싹한 연애>를 보고 친구를 응급실에 보냈다.

⌜오스카와 세주가 에어비엔비를 하나 잡았다고 했다. 서울, 뉴욕, 파주에 떨어져 있는 우리들이 하룻밤이라도 모여서 허접한 영화를 보면서 놀면 재밌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당연히 너무 좋다고 했다. 당산동에 있는 숙소는 공짜 영화를 볼 수 있어서 채택된 곳이었는데 상업용 건물을 개조해 겨우 집으로 만든 것이라 냉기가 심했다. 우리는 <오싹한 연애>를 틀어놓고 감독과 이민기를 놀리며 놀았다. 그러다 오스카가 급성 […]⌟

나는 한 번도 뼈가 부러져 본 적이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삶 구석구석의 나사를 더 단단하게 조일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틀렸음을 알겠다. 아무리 정리하는 습관으로 살아도, 내 멋대로 할 수 없는 변수들은 늘어나게 되어 있음을 알겠다. 나는 왜, 인생을 붙잡은 손힘이 마냥 세질 수는 없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깨달았을까? 어떻게, 다 붙잡고 누르면서 갈 수 있다는 믿음을 최근까지도 갖고 있을 수 있었을까? 나와 […]⌟

나는 고(孤)되다.

⌜호르몬에 문제가 있나. 혈당 문젠가. 요즘 센치의 늪(sentimurk)에 빠져서 몇 시간이고 못 나오는 일이 빈번하다. 평소와는 달리 바쁘게 몸을 굴리는 것으로는 안 되고, 동네방네 돌아다니는 것이 가장 좋은데 이것은 시공간상 도저히 불가능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 동안엔 먹히지만 빠이빠이하자마자 도로아미타불된다. 해결책으로 머리를 굴릴지, 마음을 쓸지, 몸을 놀릴지 그 배합비율을 모른다. 말을 늘어놓을수록 뻔하기 때문에 자존심이 […]⌟

나는 할머니들의 문신 이야기를 들었다.

⌜봄이 와서 반바지가 흔해졌다. 편의점 계산대에 늘어선 줄 선두에 두꺼운 남자가 종아리 문신을 드러내고 서 있었다. 그 뒤에 뿌엘또리깐 할머니 두 명이 구부정하게 서서, 손에 든 부활절 초콜릿 봉지를 부스럭거리며 대화를 나누었다. — 문신을 할까 생각중이야. — 미쳤어? — 왜? 멋있잖아 저렇게 종아리에. — 나이를 생각해야지. — 얘, 넌 아직도 생각이 50년대야. 나는 계산을 끝내고 […]⌟

나는 나가기가 싫었다.

⌜이발실 김상병님도, 세이토코모 살롱의 료스케상도 바꾸지 못한 나의 가르마를 근 사흘간의 강풍은 하루에도 서너번씩 바꿔놓는다. 궁해서 이번달은 머리를 그냥 두었다. 대신 모자를 샀으니 돈을 아끼려던 계획은 도루묵이지만, 포도주색 챙이 마음에 든다. 지난달 친구 BW가 연초에 비밀리에 연락해왔다. 앤아버에 여자친구 몰래 날아가 깜짝 청혼을 하려는데 사진을 부탁해도 되겠냐 했다. 이런 일에 딱 좋은 렌즈를 집에 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