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몇 주째 재밌다.

⌜다른 일과는 달리 글은 쓰기 전의 나와 쓴 후의 내가 달라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있어서다. 그래서 번번히 나에게 글을 맡긴 사람은 「아니, 그렇게까지 인생을 돌아보실 필요는 없었는데」 같은 입장이 된다고 한다.⌟

나는 충실한 마음을 주고받고 싶다.

⌜최근에 누군가에게 조언을 받고 나서 그게 진품이 아닌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는 게 좋겠어'라는 문장 형태를 띄고 있더라도 모두 진짜 조언인 것은 아니다. 어떤 말들은 단순히 '네가 ~하지 않으면 나의 현실이 훼손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상해에서 다섯 끼 먹었다.

⌜우리 가족은 먹는 것이 여행에 얼마나 중요한지 옛날부터 잘 알았다. 식사 때를 놓쳐 허기가 지거나, 아침에 차가운 커피를 못 마시거나 (엄마의 경우), 저녁 식사에 맥주나 와인 한 잔을 못 곁들이거나 (아빠의 경우), 긴 비행 동안 견과류나 초콜릿이 없거나 (나의 경우), 새로운 나라의 신기한 달달짭짤 과자를 못 사 먹거나 (동생의 경우) 모두 여행 점수가 확 깎이는 […]⌟

2018 인생 자평

⌜작년에 이어 같은 방법으로 한 해에 대한 평을 쓴다. 나 스스로를 위한 가감없는 〈2018 인생 자평〉을 먼저 길게 쓰고 나서, 검열과 가공을 거쳤다. 0. 총평 2018년은 내가 지난 10여 년 간 「어쩌면 나와는 관련없는 일일지 모른다」고 생각해 왔던 일반적인 인생의 측면들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나의 상을 발견하고 자세를 고쳐 나갔던 한 해였다. 나는 […]⌟

나는 꿈에서 또 남을 실망시켰다.

⌜또 말도 안 되는 꿈을 꾸었다. 지난 한 주 동안 세 번 이상 생생한, 실제 아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서울인 것 같은 곳을 배경으로 한, 내가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노력하지만 결국에는 크게 실망시키고 마는 꿈을. 오늘 새벽녁에 깨어 머리맡의 가습기 (가벼운 코감기가 있어 최대치로 해 놓고 잤다) 때문에 축축해진 배게를 옆의 것으로 바꾸게 […]⌟

나는 고양이들이 어렵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계신 묘지에는 관리인을 늘 쫓아다니는 고양이 두 마리가 있다. 흑묘 백묘 하나씩 관리인의 다리 사이를 8자로 감아 엥기며 오는 모습을 보면 일종의 위성 같기도 하다. 관리인은 그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남자이지만 묘지 관리인이라는 역할에 고양이 두 마리를 늘 데리고 다니는 점 때문에 두 번밖에 본 적 없는데도 마치 만화 캐릭터처럼 확실하게 기억하고 […]⌟

나는 네 번째 부산 여행을 했다.

⌜부산 참 여러 번 왔다. 올 초에 출장도 왔었고 그 밖에 잠깐씩 들른 적도 있었지만 이틀 이상 여행한 것만 해도 이번이 네 번째인 것 같다. 여행은 가고는 싶고 국내에는 머물고 싶고 도시에도 있고 싶고 하는 어정쩡한 마음일 때 가는 곳이다 보니 복잡한 마음을 질질 끌고 갔던 기억이 유독 많은 곳이다. 가장 처음에 갔던 게 8년 […]⌟

나는 일산에 갈 사정이 있었다.

⌜백석역 터미널 건너편에는 ‘4050을 위한 새로운 놀이터’가 곧 개장한다는 대형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4050이라면 실제로는 50이 대세인 놀이터일 것으로, 또 일산 신도시 분양 초기에 입주했던 세대가 딱 그 나이대일 것으로 짐작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일산에 가끔 가게 되는 이유도 그 연령대인 우리 삼촌네 집이 있어서다. 신도시에 중장년 놀이터(뭔지 다 알 수는 없으나)가 있는 모습이 생경했다. […]⌟

나는 우유를 쏟았다.

⌜지난주, 일 년 동안 주된 컵으로 사용해 온 도자기제 컵 하나를 깨트렸다. 내가 산 것은 아니고 동생이나 엄마가 대만이었나 여행을 다녀오면서 현지 스타벅스에서 보고 예뻐서 산, 붉은 게 그림이 그려져 있는 컵이었다. 벽이 이중으로 되어 있고 크기가 적당히 큼지막해서 뜨거운 차도 얼음 넣은 커피도 편하게 마시기 좋았다. 무게가 꽤 나갔기에, 노트북 옆에 식수 컵으로 늘상 […]⌟

나는 추석에 어디 안 갔다.

⌜어쩌다 보니 이번 추석은 조촐하게 우리 가족끼리만 보내게 되었다. 추석 전날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보러 갔다. 할머니는 어디가 아픈지도 모를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읽은 신문을 칼같이 접어 노끈으로 묶어 배출한다. 옆 집 할아버지 식구에요, 하니까 옆 가게 주인이 주차자리를 내 주었다. 할아버지는 대뜸 나더러 결혼을 일찍 하라고 한다. 지금 한들 할아버지 세대로 치면 일찍은 아니겠으나, […]⌟

나는 어차피 농담이라고 생각한다.

Eastern sky around sunset from my room
⌜나와는 전혀 다른, 심지어 나로서는 어떤 것인지 정확히 파악하기도 어려운 방식으로 현실을 감지하는 사람 덕분에 최근에 나의 세상-겪기가 무척 새로웠다. 지금까지 나를 드러내고 나의 기준을 신경쓰는 사람들로 내 주변을 채워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맞지 않는 사람들은 자동으로 걸러지는 피드백 루프를 만들어 왔다는 것. 특히 소셜 미디어 등에서 이름이 나고 나의 생각과 코드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

나는 서울퀴어문화축제가 끝나고 앓아누웠다.

⌜우리는 M을 찾고 있었다. 두 번째 트럭 뒤에 있다고 해서 열심히 걸어 여섯 번째 트럭부터 따라잡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호리호리한 실루엣의 M이 세상에서 제일 튀는 까만 시스루 드레스를 입었다고 해서 바로 찾을 줄 알았건만. 우리는 어쨌든 노래와 구호에 맞춰 어깨를 씰룩이며 걸었다. 행진이 종로에서 안국 방향으로 방향을 틀 때쯤, 갑자기 머리가 띵해졌다. 「너 얼굴 안 […]⌟

나는 친구들이 결혼했다.

⌜캐롤과 잭슨이 대구에서 결혼을 했다. 지난 10년 동안 나와 행복한 추억들을 가장 많이 만든 친구 중 둘이 서로에게 시집 장가를 간 것이다. 작년 연말에 둘이 서울을 방문했을 때, 개인적인 일로 풀 죽어 있던 나에게 결혼 소식으로 큰 기쁨을 안기고 갔다. 신도시에서 밤 늦게까지 춤추며 축하했다. 캐롤은 뉴욕에서 나고 자란 교포지만 한가닥하는 대구 가문 출신이라 대구 […]⌟

나는 재정비 중이다.

⌜2018년 상반기는 참으로 오래 기억될 시기가 될 것 같다. 내가 얼마나 연애와 같은 친밀한 관계 앞에 서툰지, 내 감정들이 얼마나 다스리기 힘든 놈들이었는지, 내가 나에 대해 안다고 믿는 신념이 어떻게 내 눈을 가리는지 많이 배우고 알게 되었다. 연애 시작과 끝에 덜컹거릴 때 터놓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와 가족, 몰두할 수 있는 일, 떠날 수 있는 […]⌟

나는 술밤 2회 보고한다.

⌜참 오랜만에 술밤 다운 술밤이 두 밤 있었기에 보고한다. 최근에 친해진 사람들과 해방촌 내리막길 술집 밥집 서너 군데를 들르며 내려오는 코스로 먹고 마셨다. 소세지와 사워크라웃 같은 걸 주는 동사무소 앞 집에서 멀로 한 병을 마시면서 세 명 모두의 힘 빠지는 하루를 고백했다. 해가 지자 경리단길 방향으로 좀 내려와 극장간판처럼 밝게 해 놓은 집에서 재료를 마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