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나게 지쳤다.

이삿짐 싸는 시늉 하느라 밤엔 지쳤다. 짐을 줄이는 것이 관건이긴 하지만 새로 산 휴대용 재봉틀과 여행용 가습기에 대해 굳이 변명하고 싶지도 않다. 재봉틀은 나름대로 지난번 끊어 온 마를 잘라 작은 소품들을 정리할 간단한 주머니를 만드는 것으로 정신없는 하루에 이바지하였다. 가습기는 방열기 건너편에 파란 물병을 물고 대치한 상태로 습도를 두고 싸우고 있다. 참으로 조용히 역동적이고 또 시적인 밤이 아닐 수 없다. 아니면 그냥 술기운이던가.
헨드릭스 진이 많이 남았는데 마땅히 섞을 것이 없어 불경하게도 남은 복분자 주스에 섞었다. 센 술 가운데는 가장 좋아하는 것이 진인데 같이 뭘 먹거나 하는 일 없이 대개 술만 마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마시고 상당히 취하지 않았던 적이 드물다. Mad Men 첫화를 봤는데, 딱히 첫눈에 반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친히 기회를 주기로 했다. 복분자 주스도 다 먹고 그냥 얼음에 마신 두 번째 진 한잔에 제법 어울렸기 때문이다.
면봉, 병에 든 물, 휴지. 필라멘트 테이프 같은 필수품들을 샀다. 두세 군데 웹사이트를 통해 쌓아둔 책들을 팔게 되어서 내일 아침 바로 보낼 수 있게 싸 놓았다. 정말 그리워하지 않을 것 같은 책들만 쌌는데도 큰 상자로 둘이다. 어렸을 때 안방 옆 창고에 아버지가 모아 둔 옛 책들이 한가득이었고 엄마는 시골소년답지 않았던 아버지의 그런 모습에 끌렸었음을 시인하면서도 저 책 좀 어떻게 해야 않겠냐고 앓는 소리를 하셨었는데 나를 아끼고 미워해 줄 미래의 누군가도 비슷한 푸념이 생기지 않겠나 싶다. 책이 참 많아졌다. 매 연말에 올해도 책 좀 읽을걸 하는 추상적인 후회에 사로잡히는 놈치고 가진 책은 참 많다.
기침 나와 못살겠네. 살지 말고 자야지.

  • 애플

    재봉틀과 씨름하는 남자라니. 로맨틱해요 *_*

  • 김괜저

    끙.. 죄송하지만 민망해요.

  • threecat

    Hey I’m going to the city in the morning and I’m gonna meet a friend first. Then I’m gonna join yoonsoo at around 3 (he’s gonna be with hongkyun), and I was hoping you could join too. Give me a call anytime from morning til 3, and we’ll see where we can meet. And you have to let yoonsoo and me sleep at your place. lol how does that sound

  • Rose

    로맨틱가이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 많이 읽는 남자가 더 로맨틱할뻔 했을텐데..봉틀이와 씨름하는 모습에서 로맨틱을 발견하시는 분도 계시네 헤헷,

    그냥 마냥 너 생활 읽는게 쏠쏠해서 즐겁다 _.

  • 김괜저

    앞에 책 펼쳐두고 재봉틀 하는 남자가 될게

  • 희륜

    앗 잡지 뭐 버렸는데 아깝다 나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