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야가 합의해서 하나의 글을 어떻게 잘 쓸 거다.

상관이었던 두 형을 만났다. 백세주를 끓이고 꿀과 생강, 대추를 넣은 것을 마시면서 도착할 사람들을 기다리기에 좋은 날이었다. 「형님 저희가 조금만 더 붙잡고 있겠습니다 형수님 감사합니다…….」이 정도로 편하고 즐겁게 취하기는 제법 오랜만이다. 너무 오랜만이어서 모자를 두고 왔다. 늦게 버스를 탔는데 깜빡 졸았더니 의왕시내까지 가 버렸다. 십 오분 쯤 얼며 걷다가 택시를 쫓아가서 타고 집에 갔다. 모자는 어제 다시 가서 찾았다. 남대문에서 산 이 만 삼천 원 짜리 모자는 벌써 잃고 찾기를 세 번 했다.

사촌동생들을 모아서 저녁을 크게 먹었다. 나이가 다들 고만고만해서 요새 관심사도 비슷하고 말도 잘 통한다. 이 저녁은 나중에 서른 살씩 더 먹고 불현듯 맞다 그날 저녁! 할 수 있는 그런 참조점이 될 것이다. 왠지 그렇다.

어제도 밤에 집 앞에서 택시를 탔는데 불만제로에 <곰팡이 김치냉장고> 나온 것을 보던 기사가 내게 자꾸 집 김치냉장고 뭐 쓰냐고 물어왔다. 흰색 김치효모라고 알면서도 곰팡이 곰팡이하는 게 좀 그랬지만 인터뷰한 할머니가 분개하며 「박사님이 만들었다고 이상이 없대! 야 내가 김치를 육십 년을 담궜는데 내가 박사냐, 지들이 박사냐?」하는 부분은 꽤 감동적이었다. 한편 오늘 점심을 적당한 핑계를 대고 뚜레주르에서 혼자 때웠는데 옆 자리 아주머니 모임에서 들은 얘기도 서사가 훌륭했다. 「괴산에 절임 배추를 시켰는데 너무 안 오는 거야. 그래서 전화를 했는데 내내 안 받다가 웬 애가 받더니 그러는 거야, 엄마가 지금 쭝국에서 배추가 안 와서 못 절인다던데요…….」

여차저차해서 글 하나를 쓰기로 했는데, 내가 글을 쓰는지 글이 나를 쓰는지 모르겠다. 오늘 밤까지는 답 없는 얘기를 계속 튀겨보다가 내일 오후에 어디 틀어박혀서 잘 좀 꿰 봐야겠다. 글은 이미 쓰여 있다. 단지 돼먹지 못했을 뿐이다.

  1. 마말

    아이가 스포일러 ㅋㅋㅋ 남한땅에 농토가 얼마나 된다고…국산재료를 쓰는 곳은 거의 없다고 봐야지.

  2. 김괜저

    그런거지

  3. Rose

    거짓말 못하는 아이는 엄마에겐 공공의적인듯 ㅋㅋㅋ

  4. 김괜저

    아이를 사무실에 데리고 영업하면 신뢰를 줄 수 있지 않을까

  5. Leeor

    카메라랑 렌즈 어떤거 쓰세요..? 사진이 너무 좋아요. 어쩌다 들어와서 하나하나 읽어보고 갑니다 ^-^

  6. 김괜저

    니콘 D300과 시그마 11-16입니다.

  7. Prenz

    솔선을 수범해주세요.

    글 잼있습니다 ㅎㅎ

  8. 김괜저

    계속 수범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