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가장 오랜 친구의 반열에 들 만한 애들과 왕년의 텃밭에서 만났다. 범계역 헌혈의 집을 마주보는 버스 정거장 의자에 앉아서 좌우로 눈을 돌리고 있는데 웅희가 나타났고, 민석이가 나타났고 재익이가 나타났고 재상이가 나타났다. 중학교 1학년 친구들이다.
「그 때 내가 지훈이랑 싸웠던 게, 내가 뭘 보고 있었나? 아무튼 지훈이가 몇 번 말을 거는데 그냥 아 뭐, 그렇게 좀 짜증내면서 그랬던 거 같애. 그러니까 갑자기 얘가 욱 해가지고 나를 팍 치더라고.」
「아 맞어. 걔가 그니까 좀 성질이 있는 스타일였어.」
「어, 어. 그래서 내가 뭐라 그랬더라, 야 그게 시비냐? 시비야? 그랬더니 괜저가 막 말리면서 그러더라고. 시비 아니고 십삼이라고..」
이렇게 헛웃음 나오는 전학생을 해치지 않고 감싸 준 친구들이니 눈물나게 고맙지 않나.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재상이나 웅희는 작년에 두세 번 본 적도 있고 또 각각 2학년, 3학년 연거푸 같은 반에 떨어지면서 기억이 더 있는 사이이지만, 민석이나 재익이와의 만남은 그야말로 과거로부터의 안녕이었다. 중학교 이삼 학년 때부터 이미 멀어졌던 기억이 있는 사이라서다. 그런데 오히려 갑절로 반가웠다. 내가 생각해도 변싱 같았던 그 때의 나를 꽤 인간적으로 기억하고 있길래 고마웠다. 또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그 때 「십삼」을 말하며 싸움을 말렸던 어이없는 아이가 그래도 조금이나마 덜 남부끄러운 놈으로 컸다는 것을 확인시켜 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까. 아, 과거의 나란! 하수구 구멍이 있다면 숨고프다.
일본식 선술집으로 가서 간단한 음식과 함께 맥주를 했다. 이내 나와서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맥주 한 병씩 사들고 중앙공원으로 갔다. 중앙공원은 과연 영유아기의 신선한 첨벙첨벙으로 가득 찬 분수공원이자 열대야 대피처 돗자리나라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얘기했더니 여섯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낮에는 무가식 집앞 세븐몽키즈에서 만나서 일을 좀 했다. 무가식 집 앞으로 찾아가는 자존심 상하는 상황을 거부키 위해 결단코 이 카페를 퇴짜 놓아야지 했지만 인터넷도 슝슝슝이고 전원도 안정적이다. 커피는 신 맛이 너무 세고 전반적으로 들쑥날쑥한 맛이었지만 점심으로 먹은 참치크로와상 샌드위치가 괜찮았다. 마지못해 「그래 여기 괜찮네」 하고 교보문고에서 필요한 것 좀 사고, 평안도 순대집에 들러 포장 하나를 하고 무가식은 정식을 시켜서 먹고 헤어졌다. 찹쌀순대, 정말이지 좀 중독인 것 같다. 내일 아침에 데워 먹어야지.
중학교1학년 친구들은 그저 가족같죠ㅎㅎ 그나저나 십삼..ㅋㅋ 제가 웃을처지는 아니지만=_=
바야흐로 하이개그의 좋은 시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