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민 없이 처썼다.

밤을 백 프로 새어야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던 아홉 페이지 짜리 사회학 페이퍼를 몇 시간만에 다 쓴 기분은 초현실적이다. 물론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고 좀 다듬고 형식을 정비해서 제출해야 하겠지만, 오래 걸리는 부분은 끝난 셈이다. 우리 가족과 나의 사회학적인 역사를 서술하면 되는 것이라, 강의에서 다룬 이론들을 끌어와 적용하는 부분만 빼면 술술 나오는 얘기기는 하다. 블로그에 글 쓰듯 고민 없이 처썼다. 참고로 나는 중요한 글을 쓸 때는 다음과 같은 절차를 거치거나 거쳤다고 친다.
1. Motif-throwing 소재던지기 : 그냥 자유롭게 생각나는 것들을 적어놓는다.
2. Theme-digging 주제파기 : 그냥 적은 것을 바탕으로 하나의 주제를 잡으려고 노력한다.
3. Structure-sculpting 구조 조각하기 : 주제 잡은 것에 맡는 구조를 정한다.
4. Outlining 윤곽잡기 : 정한 구조를 구체화하여 윤곽을 만든다.
5. Bullshitting 처지르기 : 윤곽을 잡은 내용을 옆에 띄워 놓고 각각의 부분에 들어갈 것을 손이 아프게 쓴다.
6. Unifying 통일하기 : 한글과 영어가 섞인 괴상한 김괜저어로 글을 썼으면 둘 중 하나의 언어로 합친다. 기타 일관되지 않은 어투를 통일되게 한다.
7. Polishing 갈고 닦기 : 팍팍 쓰느라 지나쳤던 부분에 멋진 말을 굳이 집어넣는다.
8. Debugging 바로잡기 : 실수로 잘못 쓴 부분이나 기타 오류를 점검하여 바로잡는다.
9. Moderating 자제하기 : 손발이 오그라드는 표현들을 고친다.
10. Formatting 형식 정비하기 : 제출해야 할 경우 요구되는 형식에 맞추어 글을 다듬는다.
11. Flaunting 뽐내기 : 자랑한다.
그나저나 오늘밤이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주말에도 계속 일해야 되게 생겼다. 일주일 더 기간이 있는 줄 알았던 내 창작문예 워크샵이 어느새 왠지 코앞으로 다가온 것. 쓰고 싶은 내용은 정했는데 어떻게 쓰면 잘 썼다고 입에 오르내릴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디자인 일도 이번 주말까지 마무리하겠다고 했는데 어쩌나.
젠장 인쇄해 보았더니 반 페이지 정도가 모자란다. 조금 더 처지르고 와야지

  1. clair

    flaunting 호호호
    체크포스트 하고 두고 두고 봐야겠네요.

    이런 다듬고 갈고 닦는 맛에 글 쓰는 거 참 좋아하는데 전공이 전공이니 만큼 기회가 잘 없어요. 덕분에 이메일 쓰면 10번씩 다시 읽어보고, 아무도 신경 안쓰는 엔지니어 윤리반 에세이 일등하고 그러죠….. -_-

  2. 김괜저

    엔지니어 윤리 반 에세이 일등
    좋아 보이는데요?

  3. 카방클

    5번째 절차에서 대폭소

  4. 김괜저

    힘든 절차이므로 웃어가며..

  5. JungkyuSuh

    Kimsungmin I have to know if

    1. there is a KMLA Thanksgiving Convention;

    of

    2. When it is (from and until);

    3. Where it is going to be;

    4. Whether there will be a home rented;

    5. Costs incurred thereof.

    Thank you.

    respond to me via j.suh@lse.ac.uk asap as i need to book a flight and postpone all my essay deadlines.

  6. 김괜저

    did

  7. EggLover

    ㅋㅋㅋㅋ우와 위에 postpone all of my essay deadlines 래 짱인덱

    나 제대로 에세이 써본지 너무 오래되서 감이 다 죽어버린득

  8. 김괜저

    너는 어카운팅을 잘하니까 괜찮아^^

  9. 심바

    “밤을 백 프로 새어야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던 아홉 페이지 짜리 사회학 페이퍼를 몇 시간만에 다 쓴 기분”

    현재시각 새벽 1시 저 왜 이렇게 선배가 부럽죠(…….)

  10. 김괜저

    한시부터 부러우면 어떡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