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스레 저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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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책 읽은 거 4/4

엄청 오래된 글입니다. 역사적 기록으로 다뤄주세요.

22   제목 Infinite Jest   (무한한 재치) 1996, En
저자 David Foster Wallace
총평 2011년 읽은 책 중 최고. 천몇백장 짜리지만 한 장도 뺄 곳 없는 글예술이다. 현실에서 조금만 멀지만 아찔아찔하게 사실적인 상상력, 인물 안팎과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매번 새로운 목소리가 나온다. 표현력에 있어 내가 이름을 댈 수 있는 그 어떤 작가보다도 자유롭고 인물과 전개는 수없이 세세한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한 곳을 향해 짜릿하게 치닫고 있으며 이런 모든 디테일이 전부 하나하나 충격적이다. 수백 장에 이르는 미주를 계속 들락거리면서 읽어야 하는데 이 형식에서 오는 효과 역시 엄청나게 천재적으로 의도되어 있고 무진장 힘들게 읽히는 대신 그 배 이상의 보답을 안긴다. 아름다움, 외로움, 오락, 정체성, 가족, 이런 것들에 대한 독창적이면서도 마음을 동하게 하는 시선. 올 늦여름에서 초가을까지는 이 책이 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드는 힘 ★★★★★ 남는 것 ★★★★★ 보편성 ★★
23 제목 阿Q正傳  (아Q정전) 1921, Ch → Ko
저자 鲁迅  (루쉰)
총평 왕만 바뀌고 민중은 만 년째 그대로라는 조롱을 한창 받던 때의 평범 이하의 중국인을 해학을 곁들여 폭로한 작품. <정신승리법>이란 참고 산다는 방식의 순응인생이 변화에 기여하는 바는 영이라는 점을 일그러진 모습으로 그려내었다.
드는 힘 ★★★ 남는 것 ★★★ 보편성 ★★★★
24 제목 Einführung in die Metaphysik   (형이상학 개론) 1935, Ge → En
저자 Martin Heidegger
총평 독서실에 앉아서 정독한 것도 아니고 들고 다니면서 한두 장씩 감상한 입장에서 실존에 대한 하이데거의 말은 이렇다고 말하기 부족하기 때문에 그냥 정신줄 놓지 않고 <나름 친절>한 문장을 따라가 보면 현대철학 공부를 여기서 잘 시작했구나 싶은 기분이 들 것이라고만 해 두겠다.
드는 힘 ★★★★★ 남는 것 ★★★★ 보편성 ★★
25 제목 Преступление и наказание  (죄와 벌) 1866, Ru → Ko
저자 Фёдор Достое́вский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총평 나보다 몇 년은 앞선 도스토옙스키 애독자인 엄마와 이틀에 한번꼴로 통화를 하는데 몇 번이나 소냐와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죄와 벌과 비범한 인간과 비겁한 인간에 대한 얘기로 길어지곤 했다, 특히 주말엔. 엄마는 수백 장짜리 힘든 고민 끝에 빛과 같은 무거운 답(신적인 답)을 내린다는 점이 감동이라고 했고 나는 지성의 갈등과 인간고뇌의 필연성이 절절하게 느껴져 까뮈의 <정의의 사람들>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숙연함이 왔다. 읽기 전 막연히 기대했던 중압감보다는 쉽게 읽히는 재미있는 책이기도 하다.
드는 힘 ★★★ 남는 것 ★★★★ 보편성 ★★★★
26 제목 Hullabaloo in the Guava Orchard   (구아바 과수원에서 와글와글) 1998, En
엮은이 Kiran Desai
총평 부대(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나만 모른 보석같은 작가. 현대 언젠가쯤, 인도 어디쯤의 이야기를 설화에 근접한 형식을 빌어 풍자를 섞어 재미있게 씀. 난잡하지만 조화롭고 병신같지만 멋있고 개개인은 궁상맞지만 어딘가 그걸 뛰어넘은 거룩한 낙천주의가 있는 것 같은 그런 인상으로 읽는 내내 즐거웠던 작품.
드는 힘 ★★ 남는 것 ★★★ 보편성 ★★★
27 제목 Bel-Ami   (미남 친구) 1885, Fr 
저자 Guy de Maupassant
총평 나는 프랑스어 배우기 전에도 배우고 나서도 가장 선호하는 불문작가가 모파상이다. 특히 단편소설이란 형식에 대한 애착이 큰 내겐 신같은 이였다. 발자크가 죽던 해에 태어난 그의 문장은 발자크, 플로베르만큼은 아니라도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 프랑스 젊은이에게도 어려울 만한 옛날 단어에는 각주가 붙어 있는 학생문고판이라 시간은 좀 걸렸어도 큰 막힘 없이 읽었다. <벨아미>는 그의 주요 단편에서처럼 운명의 주먹질을 찐하게 느낄 수는 없지만, 야망과 질투를 주인공 세워 끝까지 가
는 내용이 낭만
과 속물을 반반 합쳐놓은 듯한 열정적인 소설이었다. 당연히 기대했던 주인공의 몰락까지 가지 않고 인생 3막 중 2막만을 더럽지만 휘황찬란하게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고, 어찌 보면 인생 전반을 아우르는 그의 단편에 비해 더 짧은 시간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 흥미롭다. 모파상 특유의 아름답고 쓸쓸하고「아, 이제 알 것 같아 !」스러운 구절이 심심찮게 나와서 즐겁다.
드는 힘 ★★★★ 남는 것 ★★★ 보편성 ★★★
28 제목 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젊은 예술가의 초상)
1917, En
저자 James Joyce
총평 연초에 진작 읽은 이 작품을 목록 끝에 놓은 건 순전히 실수에 의한 우연이지만, 그 무게를 고려할 때 끝에 올리는 것이 어울리는 면도 있다. 조이스는 온 힘을 다해 사랑하고 싶은 작가이나 몇 년 전부터 이어진 노력에도 아직 약간 멀다. 한 학기나 그에 대해 매주 얘기하고, 더블린과 갈웨이까지 가서 그의 흔적을 발견하고 작품을 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 얻을 것이 많이 남아있으며 아직 나는 겉만 더듬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 작품을 특징짓는, 매 순간 변화무쌍하고 겹겹이 깊은 수백가지 목소리와 의식의 끈은 정말 독서를 특별한 경험으로 격상시키고 성장소설을 형식의 성장, 작가의 성장, 문학의 성장으로까지 깊숙히 끌고 들어오는 힘에 대한 경외이다. 대학 이전에 읽은 건 무효로 치고 초기화하여 이제 <더블리너>와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마쳤으니 다시금 <율리시스>를 펼 차례인데 조금 두렵다.
드는 힘 ★★★★★ 남는 것 ★★★★ 보편성 ★★
  1. 별일없이산다

    아 진짜 이러니까 Infinite Jest 더 읽고 싶은데. 캘커타에서 구해봐야겠다.

    키란 데사이 엄마도 소설간데 Baumgartner’s Bombay 란 책 빌렸다가 재미없어서 보다 말았다.

  2. greenies

    율리시스 읽다가 (그것도 영어판) 2/3 지점에서 포기했던 기억이 나네요. 너무 어려워서 하루에 한장씩만이라도 뜻을 다 이해못해도 그냥 꾸역꾸역 읽어보려고 했었는데, 그것조차 못 했던 아픈 기억이. 대신 책은 책가방에서 구르고 굴러 표지가 닳았었네요 ㅋ good luck!

  3. e

    저는 거꾸로 초상과 율리시즈에서 인피닛 제스트로 넘어왔는데요, 희열을 느끼며 아껴읽고 있습니다. 위 별점을 보니 율리시즈, 펴실 차례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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