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샤를리 엡도부터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까지를 간략하게 요약한다.

이런 건 잘못 요약하면 한 쪽을 망나니로 몰 수도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겉핥기 했음을 알린다.

어디 보자—샤를리 엡도 테러 직후, ‘이 사건이 상징하는 조직된 이슬람 근본주의의 위험성’에 주목하는 사람과 ‘이 사건을 팔아 자행될 이슬람교도에 대한 차별의 위험성’에 주목하는 사람으로 나뉘는 분위기에서, ‘이슬람이라는 질서체계 자체에 외부인으로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대두되었다. 논의의 일부는 ‘샤를리 엡도가 한 것이 사상적 문제제기인가, 인종적 혐오 표출인가’ 쪽으로 흘러갔다.

이슬람교도에 대한 차별이나 서구헤게모니의 폭력에 방점을 찍은 사람들은 테러리스트들의 이슬람과 종교 자체로서의 이슬람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후자에 대한 비판은 혐오를 부추길 우려가 있으므로 관용의 차원에서 삼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슬람이라는 질서체계 자체에 문제제기가 가능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샤를리 사건이 그 가능성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라고 보고, 다수 국가의 이슬람처럼 정치화된 종교 비판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 중 하나로 여성·소수자 인권 문제를 내걸었다.

내 시점에서 관찰한 바로는 대충 그렇게 해서 성기절단부터 부르카까지 무슬림 여성에 대한 얘기로 불이 옮겨붙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인종차별과 서구헤게모니에 대한 대화에 이슬람 여성을 끌어들여 물타기 했다’라고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이슬람 여성 문제야말로 샤를리 엡도에 대한 반응이 종교관용 차원으로 귀결되어서는 안 되는 대표 이유다’라고 했다.

‘여기서 여성 문제가 왜 나오냐’라는 지점이 건드려지면서 여성 문제가 부차적인 의제 취급받는 데 항의하는 목소리들이 나오던 중, 공료롭게도 김태훈의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스트가 위험>이라는 글이 논란이 되었고 이에 맞물려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라는 ‘기본으로 돌아가기’ 스타일 페미니스트 캠페인이 급부상했다. 새로 이 해쉬태그를 접하고 동참한 사람이 많았지만, 이슬람 얘기부터 골이 깊어진 이들도 많은 상태에서 진행됐기 때문에 여러 방향에서 부정확한 분노 투척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에 동참할 수 없다는 다양한 이유를 밝힌 사람들과 해시태그 지지자들이 크고 작은 논쟁을 벌이면서, ‘페미니즘 어디로 가는가’ 같은 거창한 얘기들이 나오게 되었다. ‘남에게 동참하라고 윽박지르거나 동참하지 않으면 몰지각한 이로 모는 운동방식이 잘못됐다’ 지적하는 이들이 있고, ‘논쟁하다가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고 운동방식을 핑계로 의제를 깎아내리는 것’이라고 항의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거칠게 형성된 구도가 이른바 ‘개룡남’ 서사, 일부 좌파지식인들과 <도미노> 동인간의 언쟁, 청년좌파 후원 관련 논란, 경향신문 채용면접 차별의혹 등 다양한 맥락에서 되풀이·변주되었다.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들을 많이도 건드리며 얘기가 흘러왔기 때문에 마치 처음부터 매 지점마다 목소리를 낸 사람들 몇몇을 중심으로 단단한 진영과 전선이 형성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있다. 각 지점에서 어떤 입장을 지지하느냐와 관계없이, 상대방이 논리 아닌 친목이나 집단적 잇속 때문에 똘똘 뭉쳐있다는 생각은 분명히 사실과 다르다. 나는 아직도 샤를리 엡도 이후 이 일련의 논의에 대한 생각을 정리·갱신중에 있지만, 그게 마무리되기 전에 다들 돌아버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서 이렇게 단순히 요약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