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와서 수석친구 셋을 보았다.

뉴욕에 머무는 동안 몇 차례나 호들갑을 떤 바 있는 일본 라멘 점포 잇푸도(一風堂, Ippudo)가 도산공원에 그제 문을 열었다. 주연 선배에게 고맙게도 일찌감치 소식을 듣고 있다가 오늘 무가식과 천적을 만나는 자리를 거기에 점심으로 잡았다. 사실 잡았다는 것은 정확치 않고 신사역 주변에서 점심 약속을 한 뒤 일방적으로 거길 걸어가자고 우긴 것이지만……. 라멘은 뉴욕점처럼 아주 맛있지만 덮밥은 그 정도가 못 되었다.

잇푸도에 냉장이 원활하지 않다고 맥주를 마실 수 없어서 플래툰 쿤스트할레로 자리를 옮겨 마시려 했지만 막상 가니 배가 불러 그냥 조신하게 냉차를 한 잔 씩 마셨다. 안방처럼 앉아서 음악에 손발을 까딱거렸다. 놀이가 필요없는 사이는 무료함을 경계할 필요가 없다. 그러다 무가식은 사뿐하게 떠나고 천적과 나는 고속터미널에 가서 책을 사고 혼수상가에서 내가 필요한 원단을 끊었다. 스와치에 때가 타 자몽색을 다홍색인 줄로 속아 샀지만 40수 노란 색 옥스포드는 작업에 제격이었기 때문에 만족한다. 지하 패션상가에서 구천 원 짜리 새파란 배낭에 눈이 팔려 구입했다. 앞에 허접한 태그를 떼어내니 그럴싸하다.

다시 신사동, Coffee Kitchen(현재 Ikovox Coffee로 개명)에서 원두를 백 그램만 샀다. 사무실에서 먹게 굵게 갈았다. 원두는 집 앞 썩 괜찮은 커피집에서 사려고 했었는데 무려 Monocle에 소개된 이 곳을 보고 (그것도 이번달 모노클을 영풍문고에서 사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대견해서 여기로 정했다. 거기까지 하고 나서 테스를 만났다. 그녀와 간단하게 썬더버거를 먹으며 필리핀 마약재벌 부부로 분한 사진을 찍고, 그녀가 엊그제 계산착오로 너무 돈을 많이 냈다는 몽리에 찾아가 환불을 받는 김에 적포도주를 한 잔씩 했다. 몽리는 환불에 더해 맥주도 한 잔씩 제공해 줘서 돈 더 쓰기 부담스럽던 밤에 적당한 기분은 낼 수 있게 도와주었다.

우리는 옛날과 미래와 어떻게 지냈는지와 나이차이와 건축과 영업과 디자인과 종교에 대해서 말했던 것 같다. 우리도 참…….

  1. Prajna

    서울 잇푸도는 뉴욕만큼 안 기다리겠지? 너 간 다음에 줄이 더 길어졌다.

  2. 김괜저

    따라잡는 거 순식간일 것 같은데……. 난 라멘보다 차슈덮밥이랑 버섯차슈찜과 기린을 먹으러 갔던건데 그게 좀 약했어요.

  3. chloed

    eating animals!!
    아 덮밥 먹고 싶어요 이 오밤중에..

  4. 김괜저

    eating animals on rice !

  5. Rose

    이렇게 6월이 되는군

    말에 못봐서 아쉽소. 무사히 복귀했니

  6. 김괜저

    로즈 ! 나 이번에 수첩을 빼 놓고 와서 전화를 못 했다고 하면 때릴거냐(…)
    유월 중순에 오는데 같이 맛집찾아가자.

  7. Rose

    비겁한 변명이다! 내 번호정도는 기억속에 넣어뒀어야지 유월 중순 더 좋다 나 셋째주 금요일까지 빡빡히 시험본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