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시민인권헌장 선포를 촉구한다.

서울시가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성소수자 차별 금지 조항에 대한 합의 실패’를 이유로 선포 않기로 했다. 누군가의 인권을 보호하자고 선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그들의 인권을 박탈하는 데 동조하는 혐오와 차별이 사회에 부당하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의 설명은 이와 정반대의 논리, 즉 성소수자의 인권에 반대하고 나아가 그들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권 보호선언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이는 마치 왕따를 시키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왕따 피해학생을 위한 정책을 마련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이 허튼 변명을 이해하려면 서울시가 논리적·보편적 옳고 그름이 아닌, 현실적인 상황 때문에 이처럼 실망스러운 행동을 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현실적인 상황이란 다름아닌 박원순 시장 개인의 정치적 ‘곤란함’이다. 여기서 ‘곤란함’은 서울시 청사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이 시측으로부터 직접 전해들은 단어 그대로다. 이 ‘곤란함’은 박원순 시장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인적으로 동성애자들의 인권 보호에 찬성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힘이 강한 한국에서 정치인들에게 쉽지 않은 문제다. (…) 활동가들이 대중을 설득하면 정치인들은 따라가게 될 것이고 지금 그런 과정에 있다」고 발언한 10월 중순 이래 그를 적잖이 괴롭혔나보다.

당시 박원순 시장은 동성애자 인권에 대한 본인의 개인적 소신도 밝혔고, 한국에서 이 문제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에 대한 현실 인식, 앞으로는 어떻게 가야 한다는 의지 섞인 예측까지 다 막힘없이 설명했다. 그러나 그 후 성소수자 인권이 박원순 이름 석 자 뒤에 태그로 붙기 시작하자, 시장에 당선되기 전부터 공약으로 내걸었던 인권헌장이 (상당한 진통을 겪기는 했지만) 절차상 통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내쳐버렸다. 인권변호사 시절에 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정치인이 되고 나서도 성소수자 단체를 지지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으며, 불과 한 달 전 한국 정치인으로서 사실상 처음으로 동성혼 문제를 언급한 인물에게 자연스레 기대를 가졌던 사람들은 넋이 나갔다.

「《박원순 시장에게 인권이 목숨이다 외치며 기자회견할 줄 상상도 못했다. 소수자·약자와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인권은 존재가 드러나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불러주고 호명해주고 다독여주는 것이다.》 -정욜」 @whiteforsky

박원순 시장은 합의가 필요하기에 인권헌장을 기각했다고 말했지만, 정작 문제 조항이 보호하려는 당사자들이 시청 마룻바닥까지 찾아오자 지하로 숨어 출근하며 「냉각기를 갖자」고 말한다. 인권이 곧 사회적 생존의 문제인 당사자 시민들의 얘기에는 귀를 닫고, 그들의 인권이 보호받으면 안 되는 이유랍시고 특정 종교의 교리와 비논리적 혐오를 내세우는 일부 개신교 단체들과는 부랴부랴 식사 자리를 갖고 「동성애 지지한 적 없다, 죄송하다」고 했다. 본인의 브랜드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많은 지지자들이 그에게 거는 기대 중 하나인 인권이라는 분야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고 후퇴했는데, 왜 그 때문에 실망하는 이들에게는 죄송하지 않는가?

이 사태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박원순이라는 정치인이 평소 행정가로서의 면모에 비해 권력의지가 미약한 것이 단점이었는데, 비록 최종 추구가치에서 한 발짝 후퇴하기는 했지만 보다 지지층을 넓혀서 더 큰일을 할 수 있게끔 정치적인 수완을 발휘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난 내 부모였어도 내놓기 힘들었을 것 같은 아량 넓은 분석이다. 이에 대해서는

  1. 박원순 브랜드의 핵심가치 중 하나인 소수자 인권, 행정 키워드인 시민참여·소통에 직접적으로 반하는 이런 행동은 지자체에서건 대선에서건 패색 짙은 전략이다.
  2. 만일 이런 전략이 먹힐 만한 대선 구상의 기초라고 치자. 오늘 그는 성소수자라는 가장 ‘외면해도 안전한’ 소수자를 우주선 분리체처럼 떼어놓지만, 그 다음은 또 다른 소수자를 떼어놓거나 또 다른 핵심가치를 훼손시키는 전략을 펼지 모른다. 그렇게 완성될 너덜너덜한 정치인을 그 때까지 지지한 유권자에게 남는 것은 뭔가? 우리 후보 청와대 갔다는 뿌듯함, 그뿐인가?
  3. 이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박원순 시장이 본인의 대권을 위해 어떤 전략을 펴는지는 성소수자들과 그들의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권자 및 시민들의 항의 내용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들은 현직 선출공무원에게 공약을 이행할 것, 소통할 것, 그리고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협상의 대상으로 폄하하지 말 것을 오늘 지금 서울에서 요구하고 있다. 지금 그들에게 박원순은 시장이지, 대선 연습생이 아니다.

박원순 시장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성소수자 인권 챙기기는 시기상조」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또 「보수 정치인들은 성소수자 관련해서 더욱 차별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데 왜 박원순 시장을 공격하냐」는 얘기도 듣는다. (성소수자 인권 자체에 부정적인, 무시할 수 없는 다수 의견은 이 글에서 다루지 않겠다.) 하지만 인권이 사각지대에 있고 시대의 물살을 타지 못해 수면 아래에 있는 것과, ‘인권을 선언하려면 사회갈등이 없는 형태로여야만 한다’는 잘못된 결론이 공식화되는 것은 너무 다른 일이다. 사회적 합의라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 정의상 다양성을 다수의 논리로 덮어버리는 비겁한 태도에 붙여서는 안 될 이름이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시기가 있느냐는 얘기는 이 글에 다 담기에 좀 길다. 짧게 쓰자면 2013년을 정점으로 국제적인 LGBT 인권 확장의 파장은 이미 마루를 넘어 점점 ‘상식의 영역’으로 잦아들고 있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단순히 어떤 나라들은 동성애자들이 차별받는 정도가 좀 덜하고 어떤 나라는 더 극심한 정도의 차이였다고 하면, 동성혼이라는 큰 산을 넘긴 선례가 우후죽순 나오고 있는 21세기 초반을 넘긴 세계는 성소수자들이 아무 문제없이 주류에 편입되는 (주로 서방) 국가들과 전통적 이성애중심 사회관을 유지하는 나머지 국가들 사이의 격차가 더욱 넓어질 것이다. 성소수자 인권을 보호하는 데 딱 맞는 시기란 ‘지금’이라는 것이 마땅히 운동가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기도 하지만, 국제 정세를 봐도 ‘지금 아니면 언제’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박원순 시장이 어서 인권을 외면하지 않는 뒤늦은 결단을 내리길 바라며, 그에 필요한 압박을 가하기 위해 밤낮으로 고생하고 있는 무지개행동 및 모든 한국 성소수자들의 친구들을 응원한다.

  • ㅇㅇ

    글 정말 잘 읽었음. 생각이 참 좋다.

    • 김괜저

      내가 생각하는 형이 맞는지 모르겠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