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진 노래들을 날렸다.

어떤 조사에 따르면 우리는 평균적으로 33세 즈음해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는 일을 그만둔다고 한다. 내 경우 20~22살 때 제일 음악에 대한 모험심이 컸고, 그 이후 매년 더 적은 수의 새로운 음악을 알게 되었다. 뉴욕에 처음 왔을 때에는 당최 어떤 장르인지도 모르겠는데 하여튼 무진장 좋은 음악을 듣는 친구들을 잔뜩 만나고 흥분한 나머지, 한 명씩 아이팟을 빌려 통째로 컴퓨터에 털어넣곤 했다. 지금 듣는 음악 대부분은 그 때 정립된 취향에서 가지를 친 것이다. 그 당시가 새로운 음악을 재료로 새로운 문화적 자아를 만들어내야 할 필요가 가장 컸던 때였다. 완벽하게 예측불가능한 방식으로 좋은 것들이 뭉쳐 있는 취향을 향한 전형적인 힙스터적 절충주의(eclecticism)였다고 할 수 있다. 그 집착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 때 음악을 듣는 방식으로 이제는 영화를 본다. 요즘은 본 영화를 다시 보는 일이 좀체 없지만, 음악은 들어본 음악 위주로 듣는다. 자아에서 음악이라는 세계와의 관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지고, 프론티어에서 내륙으로 이동한 것이다.

입대할 때 16기가짜리 아이팟 클래식을 들고 갔다. 등에 통신장비 검사 스티커를 붙인 그 아이팟으로 2년 내내 거의 똑같은 음악을 들었다. 음악을 취향의 격전지로 생각하지 않고 정서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편으로 기울었다. 콘서트에 가지 않고는 새로운 음악가에 푹 빠지는 일이 점점 드물어졌다. 제대 이후로는 불법 다운로드를 아예 안 하게 되면서, 아이팟에 들고 다니는 앨범 수가 별로 늘지 않은 이유도 있다. 최근에 그게 좀 아쉽긴 했는데, 예전처럼 새로운 것을 잘 안 찾게 되었다는 식의 감상적인 아쉬움은 아니었다. 단지 듣던 음악에 질린 상태였고, 특히 내 정서의 주축을 이루던 핵심 트랙들이 하나같이 색이 바래서 듣는 음악을 전체적으로 바꾸고 싶은데 거기에 쓸 시간과 돈이 없을 뿐이었다. 휴대폰에 투자하지 않았고, 미국에서 데이터를 마음껏 쓸 수도 없었기 때문에 컴퓨터에서처럼 스트리밍을 하는 것도 제한적이었다.

그러다 지난 주, 귀국을 앞두고 아이팟 클래식이 뻗어버렸다. 폴 사이먼 노래를 틀던 도중에 하드가 쉬융 하고 나가고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애플을 통해 구입한 음원들을 뺀 절대다수의 파일들이 날아갔다. 좀 홀가분한 기분이 됐다. 목록은 백업해두었기 때문에 아카이브 정신에는 타격이 없다. 새 음악을 찾아나설 기회로 여긴다. 똥 싸고 다시 먹는 것처럼,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