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봉황산에 누워 있었다.

봉황산은 삼척 시내에 삼척항과 오십천 옆으로 솟은 야트막한 산인데 벛꽃을 심하다 싶을 정도로 심어놓았다. 만개한 지 4~5일은 지나서 좀 듬성듬성하기는 했지만 이른 시간에 갔더니 사람도 없고 바람이 딱 좋게 불어서 풀밭에 누워 책도 읽고 낮잠도 잤다. 책으로 얼굴 덮고 잠깐 조는 게 이렇게 좋은데 너무 오랜만이었다. 그러려면 책의 재미, 종이와 두께, 풀밭의 상태, 볕과 그늘 등등 모든 것이 적당해야 한다.

책은 렌조 미키히코의 〈백광〉이었다. 미스테리를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지 너무 재미있어서 하루만에 다 읽었다. 이 소설에도 (미키히코의 다른 책에서도) 꽃나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넝쿨로 옥죄고, 뿌리로 움켜쥐고, 꽃과 향으로 폭력성을 과시하는 그런 꽃이 나온다.

집에 두고 온 식물들 생각이 난다. 그들의 생명력은 위협이라기보다 우려 요소다. 날이 따뜻해지니까 새순도 돋고 조금씩 푸릇푸릇해지고는 있지만 내가 물 주고 가지 좀 쳐 주는 것 말고는 제대로 된 관리를 못한 지 좀 되었다 보니 한참 동안 같은 모습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며칠 전에는 작은 화분 하나를 넘어트렸다. 분갈이를 건성건성 했던 탓에 까만 흙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제대로 좀 돌봐야겠다는 생각에 주문한 영양제와 흙도 몇 주째 통에 담겨서 그냥 있다. 산에 있었으면 이렇게 끈질기게 살았을 분들이 일인가구 베란다에서 기대감소된 삶을 살고 있구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