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철도가 좋다.

운전을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집 반경 5km 내에서만 찔끔찔끔 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내 가장 주된 이동수단은 전철과 기차다. 운좋게도 인생의 대부분을 철도가 잘 갖춰진 도시에서 살아온 자연스러운 결과다. 교통이라고만 말하기에 철도는 너무 중요한 생활의 무대이고 사회의 일면이다. 일단 철도 위에 놓이면 무의식적으로 방향이 잡아지고, 계획이 서고, 마음이 안정된다. 아무리 더러운 철도도, 광인이 많은 철도도, 붐비는 철도도 내 정을 떼지는 못했다.

우리 아빠는 평생을 도로를 놓는 일에 바쳤는데, 난 고속도로 이름도 잘 모르고 차가 늘 낯선 것은 왜일까. 나의 무의식적 반항이 도로가 아닌 철도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다면 그 결과가 어쨌든 우리 둘 다 교통에 미친 자가 되었다는 점에서 아무리 달라져보려 해도 거울상으로 서로 만나게 되는 부모자식 클리셰를 답습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무위키(동시대 한국인 뇌를 탁본 찍어놓은 듯해서 좀체 들어가고 싶지 않은 공간)에서 내가 유일하게 열심히 읽는 것이 바로 철도 관련 항목들이다. 깨알같은 역사도 많고, 현안에 대한 의견들도 넘쳐난다. 신분당선 연장이나 김포 골드라인/문제점, 이수역/역명 논란 같은 주옥같은 페이지를 읽다 보면 왠지 특유의 온라인 커뮤니티 냄새도 그리 거슬리지 않고, 세상의 다른 문제들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몰입할 수 있다. 그래서 지하철에서 따분해질 때쯤 그 역이나 그 노선 관련 지식을 찾아보는 습관이 들었다. 요즘은 유산소나 요리 할 때 철도 영상을 틀어놓기도 한다. 국내는 역쟁이 TV, 국제는 RMTransit을 즐겨 본다.

사실 철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기도 하고 위대한 철덕들(소리만 듣고 기차 모델을 맞춘다거나, 도쿄 전철도를 안 보고 그린다거나, 뉴욕 2nd Avenue Subway 완공에 걸림돌이 되는 모든 토지 보상 문제를 다 안다거나)도 많기에 어디 가서 쉽게 철도를 좋아한다고 내세우기는 힘들다. 나는 그냥 고관심 이용자. 철도는 (대부분) 공공의 영역이고 탄소 절감이나 장애인 이동권 등 공익의 중요한 축이여서이기도 하고, 철도 개발 지식이 부동산 지식이 될 때도 있으니 속세적인 관심을 끄는 면도 있다.

그러나 철도가 어디에 새로 놓이고 어떻게 개선될지 알아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더 원초적인 매력은 아마 수도권 4호선 전철이 동작대교를 건널 때, 뉴욕 MTA 오렌지 라인(IND Sixth Avenue Line)이 맨해튼 브릿지를 넘으며 머리속에 자동으로 사운드트랙이 켜질 때, 파리 메트로 6호선이 Bir-Hakeim 다리로 나가며 에펠탑이 시야에 들어올 때, 동해행 KTX가 정동진에서 꺾이며 바다를 면할 때, 서로를 모르는 사람들의 고개가 동시에 들리고 햇빛에 얼굴이 일제히 발개지는, 그런 순간들인 것 같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