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개장을 실은 채 견인 당했다.

그래서 요즘 운전해? 라는 안부 인사를 들은 지 햇수로 3년째다. 답은 여전히 월 1회 정도 호숫가에 있는 본가에 가는 것이 전부일 뿐. 운전을 안 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다고 할 수도 없는 수상한 구간에 머물러 있다. 그 동안 엄마로 시작해 동생을 거쳐 내게로 물려내려온 오래된 우리 집 차는 비에 젖었다 말랐다를 반복하고 있다.

재택근무 하던 올 봄에는 단지 내 이웃들의 동향에 좀 더 밝았었던 것 같다. 반대편 동 어느 할머니가 자개장을 분리수거장에 내놓는 것을 보았다. 큰 장롱은 아니고 앉은장에 높은 거울이 달린 전형적인 옛날 안방 거울장이었고 상태가 깨끗했다. 작업실 공사가 막 시작되던 시기여서, 나는 눈에 뭐만 보이면 작업실에 갖다놓으면 어떨까 상상하곤 했다. 어둡게 꾸밀 작은 방에 가져다놓으면 예쁠 것 같았다. 일단 다른 누군가의 손에 들거나 비를 맞지 않게 보관해야 했다. 민첩하게 드라이버를 갖고 나와 거울 부분을 장롱에서 분리하고, 차 트렁크와 뒷자석에 나누어 실었다. 처음 열어보는 트렁크 버튼 찾는 데 십 분 넘게 걸렸다.

반 년이 가볍게 흘렀다. 남태령을 넘고 한강을 건너야 하는 작업실까지 차를 운전해서 가겠다는 생각은 생각에만 머물었다. 그저 본가 가는 길 과속방지턱 넘을 때 덜커덩 소리만이 자개장이 나와 함께임을 알렸다.

재택근무가 끝나고, 판교에 있는 직장으로의 출근을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 운전 반경을 넓혀봐야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안양-의왕-성남까지 시의 경계를 두 번 넘고 복잡한 판교 시내를 통과할 뿐 아니라 미지의 영역인 회사 주차장을 이용하는 일은 평소 출퇴근 길에 실험적으로 도전하기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휴일인 오늘 별도로 시간을 내어 판교까지 차를 몰고 가서 밥 먹고 돌아오기로 큰 결심을 했다.

평촌에서 판교까지 가는 가장 좋은 길은 고속도로이지만 아직 고속도로에 올라 본 경험이 없으니, 첫 시도는 일반 도로인 안양판교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심호흡을 하고 라디오도 음악도 없이 정자세로 핸들을 잡고 출발했다. 중간에 언덕을 넘어 내려올 때 액셀이 잘 안 들어서 비상등을 켜고 잠깐 멈춰서 시동을 껐다 켜는 일이 있었다. 내가 뭔가 주행 습관이 잘못 되어 그런 것일까 나를 의심하며, 시동을 다시 켜니 대강 작동하길래 한숨 돌리고 회사에 무사히 도착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한 시간쯤 책을 읽고, 허기질 때를 기다려 백화점에서 들기름 막국수를 사먹었다. 매일 오는 동네지만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내 손발로 차를 몰아 왔다는 점 때문에 전혀 다른 곳처럼 느껴졌다. 가족 단톡방에도 자랑했다. 오늘 10km 마라톤을 완주했다는 동생 제부만큼이나 큰 박수를 받았다. 우리 가족은 내가 얼마나 운전이 체질이 아닌지, 하겠다고 말만 하고 꾸물거린 세월이 얼만지 익히 알고 있다. 나는 격려에 힘입어 돌아갈 땐 고속도로를 처음으로 도전해 보기로 했다.

고속도로 진입로를 지도에서 미리 여러 번 확인하고, 하이패스가 잘 꽂혀 있는지 점검하고, 계기판에서 고속도로에 오르면 줄곧 유지해야 할, 한 번도 도달해본 적 없는 속도인 80km 눈금을 결연하게 노려보았다. 주차정산 이후에 출발까지 시간을 오래 끌어 추가 주차비까지 지불하고 나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사거리만 건너면 이제 고속도로로 올라가게 되는 지점. 갑자기 아까처럼 액셀을 밟아도 차가 움직이지 않았다. 2차선 한복판에서 그렇게 차가 멈춰버렸다. 시동이 다시 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다행히도 비상등을 켜고, 트렁크를 열어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표시하고, 도로 가장자리로 빠져나와 견인차를 불렀다. 그나마 고속도로에 올라가기 전에 이렇게 되어서 천만다행이었다. 아까 잠깐 먹지 않던 엑셀이 내 탓이 아니었구나, 징조였구나.

오랜만에 바깥 세상을 본 트렁크 속 자개장이 늦은 오후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다. 주말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들이 신경질을 내며 내 차를 피해 지나갔다. 나는 심장이 살짝 쪼그라들긴 했지만 왠지 한번쯤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 같은 기분이기도 해서 침착한 표정으로 견인차 조수석에 올랐다. 견인차는 자개장이 든 내 차를 붙잡고 우리집 근처 정비소로 데려갔다. 그래, 아직은 여기까지다. 하지만 언젠가 나는 이 자개장을 싣고 파주도 가고 동해도 가고 부산도 갈 수 있겠지. 같이 가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