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5구에 13년 만에 돌아갔다.

파리는 같았다. 2010년에 살았던 Dupleix 역 앞 건물 일 층의 빵집에 빵이 진열된 순서(가장 바깥에 세트(포뮬)로 제공되는 점심용 샌드위치, 그 바로 안쪽에 에끌레어나 따르뜨 따땅처럼 구색을 갖추는 비누아즈, 가장 안쪽 계산대 뒤쪽으로 가장 회전이 빠른 바게뜨와 깡빠뉴)도, 건너편의 냉동식품 전문점 Picard와 그 옆 럭비 선수 모양 네온 사인의 따박도, 그 사잇길로 일요일 오전에만 서는 장에 늘어선 상인들의 옷차림과 채소의 향기, 치즈의 구색도. 고작 8개월이 몇 년도 아니고 여기에 한 때 살았노라고 말할 정도도 아닐지 모른다고 생각해 왔지만 이렇게 오랜만에 돌아가도 이 곳의 지리와 생활의 양식, 그리고 언어를 몸이 금새 기억해내는 것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변한 게 없어서이기도 하다.

믿지 않으실지 모르겠지만 빠씨 거리를 지날 때나 생마르땡 운하에서 쉴 때, 뤽상부르그 정원에 놓인 의자에 앉을 때 또는 잠시 보수중이라 흰 천으로 가려진 르 파고드 극장을 보면서 나는 청승 및 주책 수준의 격한 노스탤지어에 휩싸여 과거의 심해에서 허우적대지는 않았고, 설마 어른이 된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방금 어제를 추억하지 않고는 하루도 살지 못하는 돌아봄 의존증의 나인데도 제법 의젓하게 정상인에게 허락된 정도로만 향수를 느낀 것이 자랑스럽다. 그것은 파리라는 도시가 기본적으로 나르시스트이기 때문에 거기에 너무 큰 애정을 주면 꼴사나워질 것이라고 생각되어서인 측면도 있다.

도시의 크기가 만만하다 보니 첫날 전체를 섭렵하려는 무모함 여지없이 발동되어 4만 보를 걷고 (개인 신기록) 결국 베를린으로 이동할 때쯤엔 발 정중앙에 잡힌 물집으로 벌을 받고 말았지만. 되로 걸으면 말로 돌려주는 도시.

생각해보면 파리가 내게 준 것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서로 마음 열린 친구들과 함께 도시를 이러쿵저러쿵 살아가는 감각. 또 하나는 글쓰기란 오래오래 해 볼 만한 것임을 일깨워준 것. 사실 그 두 가지는 오스만 양식의 도시경관이나 아르누보 메트로 장식, 쨍그랑거리며 여는 주물 자물쇠 같은 배경과 소품이 없더라도 내가 지니고 살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1. 글쎄요?

    자아라는 연옥에 갇힌 퀴퀴함.

    1. 김괜저

      저라는 영화를 보고 나오신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