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포츠가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들었습니다.

보스턴 사는 친한 형 누나가 왔기에 헬스키친에 요새 문전성시인 Gotham West Market 등에서 먹고 마시다 동계올림픽 얘기가 나왔다. 올림픽·월드컵에 열광하지 않는 편인데, ‘적극적으로 열광을 억누르’거나 ‘민족주의, 촌스러!’ 같은 태세는 정말 아니고, 내가 워낙 재능 없는 운동경기를 남들이 잘 하는 거 보는 게 태생적으로 재미가 없어서 그럴 뿐이다. 게다가 요새는 경기에 몰입하기보다, 세계인이 그에 반응하는 무늬를 보고 그걸 응원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기도 하다.

자국 선수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전부 구시대적 민족주의에 절여진 것이 아니므로 그런 이유로 올림픽에 과몰입하는 사람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국제 스포츠대회는 건강한 수준에서 그런 김을 뺄 수 있는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에, 민족주의가 건강한 방식으로 청산되는 꿈을 꾸는 사람이라면 스포츠대회가 제공하는 각종 시나리오로 사람들이 점차 나라와 민족과 개인의 관계에 대한 대화의 수준을 높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올림픽에서 김연아와 안현수가 보여준 수준 높은 드라마는 한국의 집단멘탈을 판올림하는 데 훌륭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양 쪽 이야기 모두 더할 나위 없이 완결성있고 탄탄한 결말을 맞았다. 특히 김연아는 누구보다 품위있고 성스러운 퇴장의 행운을 얻었고 ‘마음 속의 금메달’ 수여가 국제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그녀를 ‘곧 대한민국’이라고 부르고 싶어하는 사람들부터 그냥 세계 수준의 스포츠인을 좋아하는 팬들까지 광범위한 사람들에게 부작용 없는 권장량의 한풀이를 선물한 것이다. 음, 안현수에 대한 얘기도 길게 붙였다가, 별 영양가 없는 말이라 그냥 여기까지 쓴다.

김연아 좋아하는 엄마와 동생, 아쉬워하고 있을 것 같아 문자했더니 답장이 이렇게 왔다. 「대단해 멋져 그치?」

  • 마말

    김연아는 멋지게 대처했는데 감정이 격앙된 일부국민들이 국가망신을 시켜서 낭패임.

  • 김괜저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내 입장에선 국가망신이라는 말은 사용하기 난이도가 높은 단어임.

  • 김연아 경기 후 현지인 동료들에게 애써 상관없는 척, 한국인이 아닌 지구인인 척 하다가 이게 뭔소린가 하며 그냥 대놓고 격분했지요.

  • 아무개

    비공개 댓글입니다.

  •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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