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무실이 생겼다.

사무실이 생겼다. 지금까지는 Wix라는 홈페이지 서비스 회사에서 공짜로 내어주던, 첼시에 있는 오피스 공유 공간을 썼었다. 고마울 따름이었지만 도서관형 모둠 책상에서 정해진 시간에만 일하는 식은 한계가 뚜렷했다. 마침 새해부터 회원제로 전환한다고 하길래, 우리 사무실을 얻을 시점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첫 투자금 지출은 그래서 학교 근처에 있는 작은 사무실 임대에 들어가게 되었다.

에릭이라는 꽤 유명한 영상편집가가 쓰는 공간에 방 하나를 빌리는 형태다. 공간은 내 방보다도 작지만 천정이 높다. 무엇보다 위치가 너무나 훌륭하다. 뉴저지에서 들어오는 나, 브루클린 사는 J, 웨스트 빌리지의 디오고, 바로 근처에 사는 알비 모두 편하게 올 수 있다. 첼시도 번화한 동네지만 여기는 그야말로 중심가여서, 10점 만점에 8점 이상을 주고픈 커피집만 세 블락 거리에 네 군데나 있다. (잠깐 그러다 말 줄 알았는데, 집 근처에 일하기 좋은 커피집이 또 있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더 중요해진다.)

에릭은 사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육십대 중국계 캐나다인 아저씨다. 프로덕션이 있을 때에는 잠도 안 자고 화장실도 안 가고 일하는 타입이자, 프로덕션이 없을 때에는 자기가 프로덕션이 있을 때 얼마나 잠도 안 자고 화장실도 안 가고 일하는 타입인지 얘기하기를 무척 좋아하는 타입인 것 같았다. 복도 벽에는 주옥같은 구십년대 명화 포스터가 엉뚱한 언어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거실 책상에는 육중한 옛날 맥도 하나 있고,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피치 덱을 보낼 곳이 있어 밤에서 다음날 낮까지 쭉 이어 일하고 나서 좀 헤롱헤롱한 상태로 이케아에 갔다. 좁은 사무실에 책상 한두 개, 의자, 잡동사니 몇 개 사넣고 바로 일을 시작할 요량이었다. 기온이 영하 십도 이내로 떨어져 레드 훅까지 덜덜 떨며 갔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한 남자가 갓 출소했는데 여자친구에게 전화 좀 빌려 하자고 물었다. 비슷한 식으로 전화기를 도난당하는 일이 흔해서 버스 핑계를 대면서 거절을 했는데, 뒤늦게 스피커폰으로라도 빌려줬으면 되는 건데 싶었다. 우리는 이케아에서 적당한 책상을 찾아 한 시간 넘게 헤매게 되었다.

  • 은비

    안녕하세요? 너무 멋진 소식에 인사 남기고 갑니다. 괜저님 새로운 시작을 축하드립니다. 새 공간에 기분좋은 일들이 가득가득 깃드시길 바랍니다;)

    • 김괜저

      감사합니다! 마침 제 동생도 한날한시에 사무실을 개시했답니다. 두려움 + 흥분 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