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볼 때 많이 사는 것들을 나열한다.

뉴욕 살림 5년 했기 때문에 서울 살림도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나 하나 간수하면 되는 원룸 자취라 실제로도 크게 어려운 일은 없었지만, 서울에서 식단을 꾸리고 장을 보고 요리하는 건 처음이라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내 식성에 유별난 점들을 이제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구하기 쉽고, 만들기 쉽고, 싸고, 입맛에 맞는 식사들의 종류를 확보하는 데 가장 재조정이 필요했다. 장보는 곳들이 특별할 건 없다. 신선제품은 이마트와 하나로마트에서, 기타 식료품은 주로 쿠팡을 통해 사고, 치즈나 가공육, 수입 식품, 빵류 등은 한남동 일대의 스페셜티 가게들에서 가끔 산다.

가장 많이 사는 식재료들을 나열해 본다.

  1. 이파리채소: 샐러드용. 로메인을 좋아하지만 긴축을 위해 양상추를 주로 산다. 간혹 엔다이브나 청경채 같은 것을 섞을 때도 있다. 구하기 쉽고 싸다면 루꼴라만 먹었을 것이다. 양배추도 종종 사서 반은 쪄 먹고 반은 채쳐 먹는데 늘 너무 너무 많아서 질린다.
  2. 돼지고기 또는 쇠고기: 돼지고기는 갈매기살을 가장 좋아한다. 팬에 구울 때 기름이 적고 쫄깃쫄깃하며 한식 양식 다 어울린다. 찌개에는 목살을 쓴다. 쇠고기는 미국산 스테이크용 등심을 키로 단위로 사서 얼려 놓았다가 한 끼에 한 덩이씩 녹여 쓴다. 돼지고기나 쇠고기나 단지 그냥 팬에 구울 뿐이다.
  3. 닭고기: 샐러드에는 냉동 닭가슴살을 쓴다. 예전에는 냉동 치킨 텐더를 오븐에 구워서 썼지만 냉동 치킨 텐더는 맛있으려면 소금과 기름이 많이 들어가고 샐러드의 맛을 너무 정해버린다. 탄수화물을 더 줄이고 싶기도 하고 1식 1팬에 익숙해지니 오븐을 켜기도 귀찮다. 가끔 그냥 길 건너 호프집에서 파는 치킨이나 퇴근길에 있는 KFC에서 오리지날을 사 먹는다. 계란은 한 판씩 사서 한 번에 서너 개씩 반숙으로 삶아놓는다.
  4. 유제품: 나는 유제품을 많이 먹는다. 매일우유 2팩씩 늘 비치한다. 습관처럼 늘 저지방 우유를 샀는데 뭐 하는 건가 싶어서 그만두었다. 기름에 절인 페타 치즈 병조림도 늘 있어야 한다. 샐러드에 넣는다. 여러 번 생 페타로 바꿔보려고 했지만 귀찮아서 실패했다. 그리고 스트링 치즈도 꽤 자주 산다. 자주 먹는 간식거리다. 마지막으로 파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를 간혹 사는데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그냥 마구 먹어버려서 (참치캔 이런 거랑 먹고 그런다) 정작 근사한 요리에 쓴 적은 별로 없다. 버터는 요즘 안 쓴다. 요거트를 한동안 자주 먹었는데 플레인에 든 당도 신경쓰여서 이제 줄이려고 한다.
  5. 견과류: 나는 견과류를 너무 많이 먹는다. 가장 싸게 구할 수 있는 아몬드-캐슈-피칸이나 호두의 조합이 있으면 큰 통으로 산다. 샐러드나 요거트에 넣는다. 해바라기씨와 호박씨도 샐러드에 꼭 넣는다. 좀 더 귀한 것들, 예컨대 피스타치오나 백잣 같은 것은 저녁에 배고플 때 집어먹는다. 견과류 이렇게 많이 먹으면 아마 안 될 거다.
  6. 밥과 빵: 쿠팡에서 현미밥을 즉석밥 박스채 사서 쟁여 두고 먹는다. 보통 한 끼에 반 쪽씩 먹으면 된다. 빵은 잘 하는 집을 굳이 지나갈 일이 있을 때에만 호밀빵이나 깡빠뉴 같은 것으로 산다. 속이 엉기성기 가벼운 것이 내 식성에 맞는다. 반 밀가루 반 옥수수가루인 또르띠야를 마트에서 팔길래 그것도 자주 사 놓고 타코를 해 먹는다. 후추가 많이 들어간 샐러드 드레싱 류를 양배추와 양파 채썬 것에 뿌리고 고기를 한 덩이 구워서 말아먹으면 훌륭하다.
  7. 그 밖의 채소: 당근이나 셀러리는 땅콩버터 운반용으로 자주 산다. 브로콜리, 가지, 애호박, 버섯은 시간 여유가 좀 있을 때 오븐에 구워서 식혀 놓았다가 이것 저것에 곁들여 먹는다. 향신채 류는 양파, 마늘, 쪽파를 늘 비치한다. 쪽파는 무엇에나 넣는데 한 단을 사면 모두 썰어 반은 얼리고 반은 냉장고에 두었다가 쓴다.
  8. 과일: 연중 제일 많이 사는 아보카도와 바나나는 상태와 타이밍이 특히 중요하므로 집 앞 청과에서 따로 산다. 자몽은 세일할 때 여러 개 사서 잘라서 견과류, 치즈와 버무린 샐러드로 먹는다. 토마토도 비슷하다. 최근에는 당도 높은 과일을 줄이기로 해서 자주 먹던 복숭아나 수박 등은 잘 사지 않는다.
  9. 레토르트: 요즘 자주 사 먹는 조제 식품을 들자면 무인양품 그린 커리, 오뚜기 비지찌개, 피코크 애호박 된장찌개, 피코크 미역국 이렇게다. 모두 하려면 손이 많이 가는 국물요리들이다.
  10. 가공육: 편리하고 저렴하게 단백질을 늘릴 생각을 하다 보니 예전보다 가공육을 분명 더 많이 먹게 된다. 훈제오리, 프랑크 소시지, 어묵, 미트볼 정도다. 어묵의 경우 용산역에 부산미도어묵 집이 있어서 거기서 산다. 생선살 비율도 중요하지만 어떤 고급 어묵은 너무 탱글탱글함을 강조해서 도토리묵 같아져 버린다. 미트볼은 이케아에 갈 때 서너 봉지씩 사 온다. 떡갈비나 너비아니, 산적류 등의 냉동식품은 하나같이 너무 달고 맛에 맥아리가 없다.
  11. 반찬류: 자취 식단에서 아보카도와 함께 돈을 아끼지 않기로 마음먹은 특혜 품목이 바로 명란젓이다. 요즘 이마트에도 팔고 유명한 장석준명란은 덜 짜고 색이 자연스러워 거의 이것으로만 산다. 파를 썰어 넣고 약간의 물과 함께 끓일 때도 있고, 육류나 계란을 구우면서 쓰는 기름에 같이 튀기듯 구울 때도 있다. 밥에 얹고 파를 뿌리면 상황 종료. 김치는 맛김치를 기본으로 파김치와 열무김치 중 하나를 두고, 명이나물 또는 깻잎절임, 삶기만 한 나물류를 사서 덮밥류에 섞어 넣을 때가 종종 있다.
  12. 통조림, 병조림: 어려서부터 형성된 오랜 습관으로 인해 스팸이 찬장에 없으면 불안하다. 참치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올리브나 스위트콘, 케이퍼도 있으면 좋다. 간식용으로 골뱅이를 가끔 사지만 맛있는 건 너무 비싸다. 가장 좋아하는 통조림은 구운 피망인데 한국 마트에는 잘 없다. 쿠팡 직구를 이용해서 주문하려고 넣어 놓은 상태다. 이건 샌드위치에 넣으면 무조건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