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 산에 갔다.

도봉산

등산을 하면 언제나 좋은데 한 계절에 여러 산을 연달아 가거나 한 적은 없었기 때문에 취미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올 들어 영화관이나 전시장 같은 곳을 가기 어렵게 되기도 했고 마침 산행 수준과 바이브가 잘 맞는 (그리고 한 명이 운전을 하는) 친구 세 명을 새로 사귀면서 이 주에 한 번 꼴로 산을 오르고 있다. 등산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왠지 등산이 아닌 것들에 대한 미련을 덜어내고 산다는 듯한 느낌이 들어 시원하다.

첫 산행은 내가 잘 아는 관악산으로 했다. 남쪽은 사람이 적은 편이다. 종합운동장 쪽에서 출발해 국기봉까지 갔다가 내려왔다. 산에서 정체성의 무게중심이 태평양 한복판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양개국어 정신상담 서비스 같은 걸 만들면 어떨까 그런 얘기를 했다. 한정식 〈봉가진〉에서 매우 만족스런 점심 먹었다.

두 번째엔 난이도를 높여 도봉산행. 등산화 없이 뉴발란스로 올라가는 데 한계가 슬슬 느껴졌다. 도봉산을 처음 봤는데 멀리서 봐도 강한 힘이 느껴지는 그런 산이었다. 중턱의 턱시도 고양이들과 이십 분간 대치했다. 내려와 한 마리에 사천 원 하는 통닭에 닭똥집으로 상당히 만족스런 저녁 먹었다.

세 번째는 가족들과 함께 설악산행. 강원도는 우리 가족 제 2의 고향이다. 사람을 피해 한계령 부근에서 남설악의 계곡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했으니 본격적인 등산이라 하긴 그렇지만 날씨가 너무 좋았고 우리만 있으니 계곡 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돌아오는 길에 인제에서 들기름 두부구이로 무진장 만족스런 점심 먹었다.

네 번째 산은 수락산. 사진은 수락산에서 찍은 도봉산이지만. 중량천 따라 가다가 왼쪽으로 돌면 도봉산, 오른쪽으로 돌면 수락산. 수락산은 도봉산보다 산세가 덜 험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정도 올라가고 나니 나무가 싹 걷히고 돌덩어리를 줄만 잡고 올라야 하는 코스가 몇 번이 반복되는 힘든 산이었다. 달라진 점은 이제 등산화가 생겼다는 점. 강풍이 불던 날에 쇠줄을 붙잡느라 맨손이 고생했다. 내려와 순대볶음으로 적당히 만족스런 점심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