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안을 구한다.

평안동

내 동네는 평안동. 놀이터와 장성한 나무가 많은 오래된 아파트 단지다. 단지 밖으로 나가는 문은 동서남북으로 있는데 각기 속성이 다르다.

남문은 역으로 난 샛길. 출퇴근길을 짧게 줄여 준다. 마음이 급한 길이다. 좁은 길을 한번 더 좌우로 잘라서 한쪽은 경사면 한쪽은 계단을 만들었다. 나는 엄격하게 번갈아 이용하려고 노력한다. 세상에 균형을 만들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그리고 여기에는 까치가 많다. 또 나무그늘 사이로 빛이 내리꽂는 곳에 바위가 하나 놓여져 있다. 그 바위에 뭔갈 올려놓고 사진을 찍고 싶단 생각을 항상 한다.

서문은 거주자 차만 들어올 수 있는 찻길. 쌩쌩 차가 다니는 길에 당신을 덩그러니 내려놓는다. 아빠 차를 얻어타고 집에 내릴 때에는 여기에 내려 걸어온다. 엄마 차로는 단지 내로 들어온다. 엄마 차를 우리집에 등록해 놓았기 때문에 출입과 주차가 자유로운 점을 살린 서비스다. 아마 다음달 쯤에는 내 차로 등록을 옮길 테고 그 때부터는 엄마 차도 큰길에 서겠지.

동문은 어린이집을 지나 널찍한 산책로로 빠지는 기분 좋은 보행로. 나무 많은 우리 단지치고도 특히 아름드리 나무가 빼곡하게 길 위를 덮고 있어서 낮에도 기분 좋게 어둑 서늘하다. 할머니들과 야쿠르트 판매원들, 옆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낮에 많이들 나와서 앉아 있다. 저번에 여기에 정말 한 이십 년은 기른 것 같은 굵직한 벤자민 나무 화분을 어떤 아저씨가 가져와 만 원에 팔고 있었는데 급한 일 보러 가는 참이라 기회를 잡지 못했다.

북문은 단지 상가가 있는 정문. 정문이지만 가장 멀어서 자주 가지 않는다. 어쩌다 바람은 좀 쐬고 싶은데 멀리 가기에는 어딘가 무리가 있을 때 가는 문이다. 거기에는 원래 작은 카페가 있었지만 없어졌고 지금은 무인 아이스크림 편의점이 들어왔다. 가끔 하나 사서 먹으면서 돌아오는데 세상에 나와 아이스크림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늘은 지갑 없이 나가서 빈손으로 들어왔다. 다만 달이 너무 밝아서 눈이 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