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0월 29일에 일기를 쓴다.

오늘은 이태원 해밀톤호텔 서쪽 길에서 통제되지 않은 인파가 내리막길 골목에 몰리면서 159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은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서울광장에서 시민추모대회가 열리고 KBS에서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참사 현장은 꽃과 포스트잇으로 덮이고 있다는데, 나는 종일 다른 일정을 소화하느라 못 보고 이제야 집에 온 채로 하루를 그냥 넘길 수는 없어서 일기를 쓴다.

우리에게 이태원 거리는 숨쉴 수 있고 가슴을 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나도 여기서 처음으로 나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런 저런 방식으로 지금은 세상을 떠난 친구들과 마지막 추억을 쌓고, 이쪽이라고 소문난 유명인과 눈도 마주치고, 길바닥에서 보란듯이 애인과 입을 맞추기도 했다. 그래서 작년 오늘, 이태원에서 열리는 한 파티에 가려다 너무 피곤해서 못 가고 작업실에서 SNS로 수상한 증언들이 점점 거대한 참상을 가리키는 것을 보면서 떨칠 수 없었던 참혹한 상상은 전혀 추상적이지 않았다. 내가 아는 거리에서 나와 같은 사람들이 깔려죽었구나…

인스타그램으로 외국 친구들이 여느 해처럼 분장하고 웃고 떠들고 노는 모습을 보면서, 어찌할 줄 몰라 손을 내저으며 할로윈을 통째로 취소한 이 나라 사람들에 답답함을 느낀다. 불길한 것을 눈에 보이지 않게 치우고 잘못을 개개인의 몫으로 나누어 죄책감으로 떠미는 것은 익숙한 방식이다. 마약을 하고 노는 이들을 잡아내려는 감시는 있지만 안전을 위한 주시는 없었다. 국적불명의 음지 놀이문화에서 좋은 일이 날 리 없다는 식으로 공식 행사가 아니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 나라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잘못 살지 않았냐.

여기서부터는 조금 다른 얘기다.

오늘 매튜 페리도 세상을 떠났다. 그가 오랜 시간 동안 약물중독으로 인한 시련을 겪은 것은 잘 알려져 있고, 비록 현 시점에 그의 죽음이 직접적으로 그에 의한 것임이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그의 시련과 죽음을 연결지어 생각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내가 좋아했던 유명 엔터테이너들, 그러니까 히스 레저부터 에이미 와인하우스, 브리트니 머피, 필립 시모어 호프먼, 휘트니 휴스턴 같은 이들의 죽음을 떠올린다. 나는 그들의 약물 오용이 그들이 나약하거나 혐오스러운 인간이어서 받은 벌이라거나, 그들이 자기 손으로 선택한 일일 뿐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떠한 취약한 순간들이 있었고, 예민할 수밖에 없는 산업이 있었고, 말초적인 안식이 유혹하는 길로 가게끔 유도된 어떤 좁은 내리막의 길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 많은 사람들은 마약 중독이 자업자득일 뿐 아니라 자기에게 믿음과 애정을 준 대중에 대한 일방적인 민폐이며, 비난밖에 받을 것이 없다는 듯 말한다. 나는 마약 중독을 올바르게 두려워하는 것은 그것이 좀먹은 인생과 성취를 안타까워하고, 그것이 의존의 수준으로 넘어가는 방식을 밝은 곳에서 공부하고 이야기하며, 그것에 목숨이나 인생의 큰 부분을 잃은 장본인들에게 연민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신질환이나 만성질병, 고도비만 등 다른 어려움과 마찬가지로 마약 중독도 사회의 주변부에 놓여진 사람들에게 훨씬 더 큰 해를 입히기 마련이다. 평범한 시민들은 저런 일을 겪지 않아, 특수하고 유별난 것들만 겪는 일이야. 너희가 잘못 살지 않았냐. 그렇게 타자화하고 손가락질하면 평범할 수 없는 형편의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되고, 취약점은 더 큰 취약점이 된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모두가 같은 사람으로서 헤쳐나가야 한다.

  1. mov

    괜저님, 잘 읽었습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모두가 같은 사람으로 헤쳐나가야 한다…
    (늘 잘 읽고 있는데 오늘은 읽고 있다고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1. 김괜저

      알려주셔서 반갑고 감사합니다!

  2. mov

    괜저님, 잘 읽었어요. 늘 잘 읽고 있는데 오늘은 괜히 알려드리고 싶었네요.

  3. 우람

    울림 있는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