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베를린에 편하게 갔다.

베를린은 가는 마음이 편한 곳이었다. 머무는 동안 별다른 일도 없었기 때문에 굳이 일기를 남길까 하다가 그래도 그 여유있는 느낌을 기억하고 싶어서 사진 위주로 올린다. 파리에서 발에 잡힌 물집이 결국 터지고 상처가 나서 베를린에서는 절뚝거리며 걷다가 쉬다가 해야만 했다. 다행히 첫날 티어가르텐을 왕복으로 가로지를 때까지는 발이 멀쩡했던 것이 다행이었다. 말도 안 되는 비건 라멘을 먹었고, 공구와 건축자재 가게를 찾아갔다. 크로이츠베르크와 노이쾰른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나는 어차피 베를린에 대해 다 알래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숙제로부터 해방된 기분을 느꼈다. 애매한 친구가 두세 명 살지만 연락하지 않는 데에서도 해방감을 느꼈다. 내가 여기 있어야 할 자격을 증명해야 할 압박 같은 것이 없다. 모두가 놀랄 정도로 남들의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으니 나도 며칠간만 그래야겠다. 이번에 알게 된 호주 출신 Alex Lahey 콘서트에 가서 그 발로 절뚝거리며 신나게 놀다가 나와서 푹 삶은 커리부어스트와 감자튀김을 잔뜩 먹고 지하철을 탔는데 사내 무리들이 패싸움을 하다가 객차 내에서 페퍼 스프레이를 써서 승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있었다. 절뚝거리며 콜록거린 기억이다.

  1. 위지

    예전부터 항상 사진에 감탄하면서 잘 보고 있어요
    시선이 너무나 부럽네요

    1. 김괜저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2. 이글루

    이글루스 때부터 늘 멋진 사진 잘 보고 있습니다. 이런 질문 지겹게 들으셨겠지만 카메라 문의해도 될까요? 도구가 시선을 만드는 건 아니지만 어떤 도구인지라도 알고 싶은 마음..

    1. 김괜저

      말씀 감사합니다. 니콘 Zfc로 바꾸고 처음 올린 사진들이네요.

  3. 돌로레스

    빛이 아룸다워요

    1. 김괜저

      맞아요 빛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