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례 첫날에 코로나에 걸렸다.

토요일 새벽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임종은 아빠가 지켰다. 향년 구십 구세. 얼마 전에 백 살이 다 무어냐 하셨다는데.

할아버지와 문안 인사 이상의 대화를 한 적은 그리 많지 않다. 할아버지는 나로서는 가늠할 수 없는 오래 전 세상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분이었고, 나는 그 세상을 사는 것이 어떤 일이었을지를 짐작만 할 뿐이었다. 할아버지를 이해하는 데에는 할아버지를 보는 것보다,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펼쳐진 친척 식구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더 도움이 되곤 했다.

내가 군입대를 할 때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은 ⌜공정하게 해라」 였다. 어째서 장교도 아니고 한낱 병사로 입대하는 손자에게 해 줄 말이 ⌜건강해라」 나 ⌜잘 적응해라」 가 아니고 그런 힘 빠지는 말인지 그 때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니 내가 나한테 한 말인가 싶을 정도로 내게 딱 맞는 말이었다. 내가 어디를 가든지 나에게는 변하지 않는, 어떤 고정된 역할과 도리 같은 것이 있다고 믿어야만 의미가 있는 말.

빈소가 갖춰지고 우리 가족끼리 제사를 지냈다. 엄마는 할아버지가 안 계신데 우리가 순서를 알아서 잘 할 수 있겠냐 걱정을 했다. 아버지가 할아버지 자리를 대신했고 나는 왼켠에서 제주를 따랐다. 절을 하려고 바닥을 짚었다 일어설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전날 시 행사에 다녀오면서 바깥에 오래 있었던 것 때문인지 몸살 기운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건 다음날 예감대로 코로나로 밝혀졌다. 얄궂게 되었다. 그나마 첫날에 가족들과 함께 절을 올리고 술을 따르고 올 수 있었던 것 덕분에 마음이 조금은 편하다. 조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