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스레 저렇게

괜스레 저렇게는 김괜저(@gwenzhir)의 블로그이오니 잘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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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등 하나를 없애고 두 개를 달았다.

어제 점심 약속이 있어 집을 나서다가 부엌 옆 작은 식탁에 올려놓았던 유리 전등갓을 떨어트렸다. 경쾌한 와장창!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났다. 미세한 조각들이 꽤 멀리까지 도달한 것을 보고 긴장했다. 수건을 깔고 무릎을 꿇고 비로 꼼꼼하게 쓸어담았다. 그 유리 전등갓은 저번 주말에 빼 둔 것이었다. 벽 한켠에 무심하게 달려 있는 스콘스 형태의 전등인데 큰 사기 대접을 반으로 잘라놓은 것처럼 생겼다.

나는 유물 생겼다.

을지로의 프래그 스튜디오가 김서울 작가와 협업해서 황동으로 향꽂이와 받침을 만든다고 해서 뭔가에 홀린 듯이 가서 후원했다. 좀 오래 갖고 있을 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자주 생각하는 요즘이다. 막상 요즘엔 향을 잘 안 피우기는 한다. 집이 좁고 환기가 도 아니면 강풍 이어서 세련된 정도만 피우는 게 잘 안 된다.

나는 상해에서 다섯 끼 먹었다.

우리 가족은 먹는 것이 여행에 얼마나 중요한지 옛날부터 잘 알았다. 식사 때를 놓쳐 허기가 지거나, 아침에 차가운 커피를 못 마시거나 (엄마의 경우), 저녁 식사에 맥주나 와인 한 잔을 못 곁들이거나 (아빠의 경우), 긴 비행 동안 견과류나 초콜릿이 없거나 (나의 경우), 새로운 나라의 신기한 달달짭짤 과자를 못 사 먹거나 (동생의 경우) 모두 여행 점수가 확 깎이는 사태를 만든다.

2018 인생 자평

작년에 이어 같은 방법으로 한 해에 대한 평을 쓴다. 나 스스로를 위한 가감없는 〈2018 인생 자평〉을 먼저 길게 쓰고 나서, 검열과 가공을 거쳤다.

0. 총평

2018년은 내가 지난 10여 년 간 「어쩌면 나와는 관련없는 일일지 모른다」고 생각해 왔던 일반적인 인생의 측면들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나의 상을 발견하고 자세를 고쳐 나갔던 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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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튜버 얘기만 했다.

월간 《현대문학》에 또 한 번 글을 쓸 수 있는 운 좋은 기회가 생겼는데 주제가 ‘세상에 없는 책’이었다. 평소에 책은 안 읽고 유튜브만 보고 있었던 터라 딴에는 솔직하겠다고 유튜버들이 나오는 소설집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써냈다. 〈구독한 사랑〉이라는 제목을 붙인 그 글이 실린 1월호를 읽는 중이다.

「(…) 나는 일단 최근 읽었던 책들을 생각해보는 데서 출발했다.

나는 양배추 좀 구워 봤다.

화요일에 휴일 하루가 더 있으니 주말이 매우 여유로워서 이틀 내내 머리를 식히며 집안일만 했다. 특히 부엌을 유례없이 깨끗하게 딥청소(‘대청소’로는 전달이 안 됨)했더니 금방 그 부엌을 쓰고 싶은 마음이 솟았다.

마트에 갔는데 아뿔사, 마트 쉬는 일요일이다. 원래는 고기와 야채를 사서 잔뜩 구워 먹으려고 했었는데. 집에 먹을 게 마땅히 없긴 해서 마트 옆 유기농 슈퍼마켓에라도 갔다.

나는 꿈에서 또 남을 실망시켰다.

또 말도 안 되는 꿈을 꾸었다. 지난 한 주 동안 세 번 이상 생생한, 실제 아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서울인 것 같은 곳을 배경으로 한, 내가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노력하지만 결국에는 크게 실망시키고 마는 꿈을.

오늘 새벽녁에 깨어 머리맡의 가습기 (가벼운 코감기가 있어 최대치로 해 놓고 잤다) 때문에 축축해진 배게를 옆의 것으로 바꾸게 한 꿈은 어떤 지하 상가같은 곳에서 펼쳐졌다.

나는 고양이들이 어렵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계신 묘지에는 관리인을 늘 쫓아다니는 고양이 두 마리가 있다. 흑묘 백묘 하나씩 관리인의 다리 사이를 8자로 감아 엥기며 오는 모습을 보면 일종의 위성 같기도 하다. 관리인은 그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남자이지만 묘지 관리인이라는 역할에 고양이 두 마리를 늘 데리고 다니는 점 때문에 두 번밖에 본 적 없는데도 마치 만화 캐릭터처럼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는 돈 돈 한다.

어쩐지 주변에 돈 얘기 잘 안 하는 사람으로 인식돼 왔던 것 같다. 공부도 돈 버는 일과는 별 상관 없는 과목들로만 하기도 했고, 딱히 어떤 길로 가야 돈을 더 버는지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살아온 느낌이다. 실제 내 마음 속에도 돈이 차지하는 지분이 별로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마주친 동창이 만나자마자 재테크 얘기를 하는 걸 보고 왜 저러나 싶어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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